(수 15:17~19)

과거 1960~70년대에는 경제 발전과 함께 교회도 한참 성장하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여름엔, 산상 기도회, 수련회, 부흥회가 성황을 이루었고 여기저기에서 교회를 개척하고 부흥시킨 놀라운 이야기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러한 이야기들이 마치 옛날이야기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그런데 지금은 신앙적 열심을 추구하는 열정이 서서히 식어가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 물론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그 이유 중의 하나는 영적인 관심의 부족과 안일한 삶을 추구하기 때문이라고 생각되어집니다.

이제 우리나라는 변화발전 했고 과거 농경문화 시대와는 전혀 다른 패턴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삶의 질이 크게 향상  되었고 살아가는 방식도 많은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만족보다는  불평과 불만이 더 많은 것 같습니다. 왜 그럴까요?  인간은 근본적으로 ‘영적인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보다 나은 삶을 위하여 살기 좋은 곳, 넓은 곳으로 이사도 해보고 보다 돈을 벌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러나 거기에도 만족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영적인 삶이 충족 되어져야 행복을 느끼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보다 높은 차원인 영적인 삶을 추구하며 살아야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보다 높은 차원의 삶이란 무엇일까요?

본문에 보면 모세 때부터 약속한 헤브론을 얻기 위하여 자기의 딸 악사를 현상으로 내걸었는데 마침 옷니엘이 그 땅을 쟁취하였으므로 갈렙은 그 약속대로 옷니엘에게 자기 딸을 주었습니다. 갈렙은 자기 딸을 출가시킬 때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 고 물었습니다. 그때 악사는 “내게 복을 주소서 아버지께서 남방 땅으로 나를 보내시오니 샘물도 내게 주소서!”하였습니다. 이때 갈렙은 딸에게 윗샘과 아랫 샘을 그에게 주었습니다. 여기에서 갈렙이 헤브론을 정복하는 과정에서 몇 가지의 영적인 중요한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첫째, 안일한 삶이 결코 우리의 행복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85세의 백전노장 갈렙은 기업을 분배하기 전에 자기부터 헤브론 산지를 달라고 하였습니다. 헤브론 산지는 누구나 가기 싫어하는 땅이요, 제비를 뽑아도 아무도 자기에게 안돌아 오기를 바라는 땅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곳은 척박한 땅이요 강대한 아낙 자손들이 살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도 갈렙은 헤브론으로 가서 살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는 비록 나이가 들었어도 안일하고 편안한 삶을 포기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행복은 안일하고 편안한  삶을 추구하는 데서 오는 것이 아니라, 일하고, 땀 흘리고 노력하며 투쟁하는 데서 얻어지는 것입니다.

둘째, 갈렙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었습니다. 그에게는 헤브론이 산악 지대라는 점도 문제가 되지 않았고 아낙 자손도 문제가 되지 않은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에게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에게는 분명 보다 높은 차원의 영적인 마인드가 있었습니다.

때로 지나치게 현실만 보고 살기 때문에 하나님의 영적인 축복을 놓치기 쉽습니다. 우리는 믿음의 눈을 가지고 현실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러한 믿음을 가지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는 영적인 차원의 삶을 살 때, 참 만족과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셋째, 갈렙은 마침내 옷니엘을 통하여  헤브론 산지를 점령하였고 산위의 있는 윗 샘과 아랫 샘을 딸에게 주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주님은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을 선물로 주십니다. 우리는 갈렙의 딸 악사가 “내게 복을 주소서!”라고 구한 것 같이 주님께 소원을 아뢰어야하는 것입니다. 주님을 의지하고 구하는 사람만이 산 위의 샘물을 마실 수 있는 것입니다.

갈렙이 딸에게 윗 샘과 아랫 샘을 준 것 같이 하나님께서는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선물로 주십니다. 여기에 참 행복과 만족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보다 차원 높은 삶을 위하여 주님의 크신 은혜와 능력을 구해야합니다. 바로 그때 우리는 신령한 샘물, 승리의 샘물을 마시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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