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사명의 존재다. 각자에게 맡겨진 소임이 있고 저마다 존재 이유와 존재 가치가 있다. 고로 사람은 자신을 알고 개성을 발휘하여 자기의 사명을 자각하고 그 사명을 천직으로 삼아 성실히 수행해야 한다.
스위스의 카를 힐티가 말하길 자기 생의 최고의 날은 자기의 사명을 바로 알고 자각하는 날이라고 했다. 실존주의의 시조인 키에르케고르는 세상이 아무리 무너져 내려도 놓칠 수 없는 진리를 발견하고 그것을 위해 살고 그것을 위해 죽을 수 있는 그것이 나의 주체적 자리요 실존적 진리라 했는가하면, 리빙스턴은 나의 사명을 다하는 날까지는 죽을 수도 없다고 했다.
사명이란 심부름을 맡은 목숨, 즉 심부름꾼으로 부름 받은 생명이며 누구로부터 보냄을 받은 사신이기도 하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계시된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실현하도록 하나님께로부터 파송받은 하나님의 심부름꾼이다. 교회가 해야 할 사명을 교회되게 하고 복음전파로 세상을 구원하고 사회에 희망과 미래를 제시하고 하나님 나라를 지상에 임하게 하는 것이다. 이에 바울은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 하노라”고 말했다.
오늘의 한국교회의 현실은 어떠한가? 하나님의 가치보다 세속주의에 매료되어 교회로서의 정체성과 예언자적 사명을 망각한 채 성과 속이 뒤바뀌어 가고 교회의 본질이 퇴색되어 가고 있는 실정이다.
최근 총회본부 재정비리 건으로 교단이 혼란스럽고 때를 같이하여 몇몇 분들이 성결모임을 결성한다는 소식이다. 본래 우리 교단을 성결교단이라 함은 명분이나 수적 개념이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한 진리 그 자체이다. 시대가 요구하는 것은 진실과 새로운 가치다. 고사에 불성무물(不誠無物)이라 했으니 참이 없으면 아무 것도 이룰 수 없다는 뜻이다. 사명인는 선공후사의 정신을 행동의 신조로 삼아야 한다.
사리사욕은 양심을 마비시키고 정의감을 혼탁케 한다. 정신이 혼탁하면 진리가 보이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에스겔 선지자를 나라의 파수꾼으로 세우시고 그에게 “너는 그 패역한 족속과 같이 패역한 자 되지 말고 내 입에 말로 그들을 깨우치라”고 명하셨다. 한국교회는 더 이상 구약시대 율법주의나 제사장 서기관 바리새인 바람의 일은 지나간 그 시대 규율로 끝내고 성결성 회복에 힘써야 한다.
노자는 사명인이 공을 이루었으면 조용히 물러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 했다(功遂身退 天之道也). 아름다운 퇴장은 능력만큼이나 고귀하다. 나아갈 때 나가고 물러설 때 물러설 줄 아는 것이 귀거래사의 도의요 지혜다. 때가 되어 많은 사람들로부터 축하를 받으며 퇴장하고 더욱 새롭게 도약할 수 있도록 후진들에게 물려주는 것이야말로 아름다운 미덕이다.
바울은 달려갈 길을 다가고 죽음이 가까워 옴을 느끼고 그 사역을 후계자에게 부탁하며 물러나는 아름다운 모습을 디모데후서에서 보여주고 있다. 또한 선지자 사무엘은 늙어 머리가 센 때에도 백성들에게 선하고 의로운 길을 가르치고 그들을 위해 여호와 앞에 기도하는 죄를 범치 않고 쉬지 않고 기도한다고 했다.
시대의 마지막 보루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