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겨를 키질하다가 눈에 티가 들어가면 하늘과 땅이 뒤죽박죽이 된다. 손가락 하나로 눈을 가리면 태산도 보이지 않는다. 겨는 천지의 위치를 바꿔놓을 수 없고, 손가락은 태산을 보이지 않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눈이 그 가림을 받게 되면 천지처럼 큰 것도 오히려 어두운 바가 되고, 태산같이 높은 것도 오히려 가리는 바가 된다. 어째서 그런가? 천지나 태산은 먼 곳에 있고, 겨나 손가락은 가까운데 있기 때문이다.”(신흠·거폐편, 한글역·정민)

▨… 할 소리를 한다는 것은 속시원한 일이다. 꾹꾹 눌러두어 속병이 생길 수밖에 없던 일을 내뱉으면 10년 묵은 체증도 내려갈 수 있을지 모른다. 하고 싶은 소리였지만 이런 저런 형편 때문에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던 것을 누군가가 대신해준다면 듣는 사람의 귀는 수양산 물로 씻어낸 백이, 숙제의 귀보다 배는 더 시원해질 수도 있을 것이다.

▨… 개인의 경우도 그럴진데 권력을 향해서 누군가가 내가 못하는 소리를 대신해준다면 그 시원하기가 땡볕에 밭 한마지기 김매고 들이키는 냉수 한 사발에 비기랴! 군사독재의 암울한 시대에 행간의 의미를 캐며 글 한 줄 마다 돋보기를 들이대었던 독자들은 속 시원한 글이 성결신문에 게재되기를 고대하고 있음도 알고 있다.

▨… 총회장까지 지내신 어느 은퇴하신 어른이 토로하셨다. “애오개의 내용이 알쏭달쏭할 때가 많은데 좀 더 신랄하고 날카롭게 지적해주면 안되는가?” 가깝게 지내는 후배 목사가 토를 달았다. “총회장이셨을 때 그렇게 말씀해주시지 않고… 지금으로도 애오개가 고까운 사람이 한 둘이 아니라는데….” 걸핏하면 성결신문 불매운운하며 압력을 행사하려는 힘의 실체를 전 총회장도 모르는 것일까.

▨… 천지를, 태산을 보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끊임없이 티로 손가락으로 눈을 가리려는 힘을 어찌할 수 없음을 안타까이 여겨서인지 교단 일각에서 새로운 신문을 만들자는 움직임이 있는 모양이다. 이왕에 신문을 만들것이라면 눈을 가리려는 사람들이 주동하는 신문이 아니라 할 소리를 하는 사람들이 만드는 신문이 나오기를 기대한다. 개인의 명예나 이기심때문에 교단언론이 이용되는 사태만은 없어야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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