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전 세계적으로 가수 싸이(PSY)의 강남스타일이 대세이다. 그래서 우리교회 권사님도 ‘강남스타일’의 소름 돋는 맛으로 대박을 치려 한다. 강남스타일은 어언 수억 명의 애창곡이 된 중독성 있는 노래가 되었다. 어떤 중독성일까?

중독된 수억의 사람들이 모두다 한국말을 잘 아는 것이 아니고, 말춤에 중독된 것은 더더욱 아니다. 왜냐하면 중독된 그들의 흥얼거림은 단지 율동과 몽환적 동작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면 분명 강남스타일의 중독성은 소리에 있다. 이 시대는 소리를 파는 시대이다.

우리가 소리에 중독되는 이유는 몸이 반응하여 상큼한 전율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소리가 뇌에 반응할 때 신체도 반응한다. 반응의 강도는 청각이 가장 세다. 청각과 시각과 촉각은 반응의 출발점에서 고도화되어 감정으로 나타난다. 감정은 시각보다 청각에 더 큰 영향을 받는다. 그래서 청각반응의 강도가 더 세고 오래가며, 청각은 기쁨과 슬픔으로 상태가 오래 지속된다.

시각은 고개를 돌리거나 눈을 감으면 그만이지만 청각은 계속 들리기 때문에 청각적인 위협이 더 세고 원초적이다. 그래서 몰입한 감정은 전율하는 카타르시스와 함께 재미를 느끼게 하거나, 눈물을 흘리게 한다.

감정은 고조와 이완의 밸런스로 호흡과의 충돌을 조율해 나간다. 감정은 옅음과 깊음, 좁음과 넓음, 빠름과 느림, 굳셈과 여림이 있다. 싸이의 강남스타일은 소리의 감정으로 사람들을 중독시킨다.

기독교인에게 소리의 중독은 복음이 우선이다. 복음은 ‘복된 소리'이다. 세상의 복된 소리, 나를 죽여 나와 남을 살리는 세상을 바꾸는 소리이다. 이 복된 소리가 여호와 하나님의 존재방식이다. 믿음은 ‘소리’의 들음에서 난다(롬 10장). 소리로 예수를 경험하며 느낀다(행 2장). 복음의 소리는 중독성을 가지고 끊임없이 말을 걸어온다. 그 소리는 지속적인 영적 성장과 성숙을 요구하기에 아픈 고백의 소리이다. 예수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그분을 만날 수 있는 존재양식이다.

오늘도 예수를 생각하고, 보이지 않아도 전혀 낯설기보다 친근함으로 다가오는 예수의 소리를 듣는다. 한평생 가장 버림받고 소외된 자들 속에서 거룩한 하나님의 형상을 쫓아 사는 김숙향 선교사(필리핀)로 부터 ‘예수님도 이러했겠지’라는 소리를 듣는다. 그녀의 삶을 담아낸 책 ‘가장 낮은데서 피는 꽃’은 주변을 놀라게 하며 예수의 소리를 듣게 만든다.

이제 며칠이 지나면 마구간 여물통에서 태어난 한 힘 없는 아기를 우리와 함께 계신 ‘임마누엘’이란 소리로 찬양을 드린다. “즐겁게 소리칠 줄 아는 백성은 복이 있다”(시 89:15)고 한다. 영원으로부터 소리의 메시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마 4장)는 우리의 마음가짐을 새롭게 만드는 ‘천년의 소리’이다.

이 복된 소리로 “아무 것도 가지지 않은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 바울처럼 소리치며 살아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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