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종치고 난로에 불을 켠 새 신자

류응현 씨는 처음 믿기 시작할 때부터 새벽기도회를 다니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부흥회 때 이성봉 목사가 “기왕 예수를 믿으려면 잘 믿어야 하고, 잘 믿으려면 새벽기도를 해야 한다”고 간곡하게 말했기 때문이다.

그의 집에서 함열성결교회까지는 약 3km가 되는 거리였다. 그는 머슴 생활의 습관 때문에 누구보다 일찍 일어나 7살짜리 큰 아들 승규를 깨워서 교회에 데리고 다녔다. 승규는 한참 잠이 많을 때여서 잠을 깨우면 앙탈을 부렸지만, 그때마다 좋은 말로 달래고 옷을 입힌 후, 새벽 산길을 함께 달려 교회로 갔다.

가는 도중에 소나무 숲에 이르면 그들은 길을 멈췄다. 그리고 아버지가 큰 소나무 위로 올라가서 가지 위에 발을 얹고 마구 흔들면 굵은 솔방울들이 우르르 떨어졌다. 그러면 아들은 목도리처럼 목에 감은 큰 자루에 솔방울을 마구 주어서 가득 담았다.

훗날 류승규 목사가 그때의 심경을 솔직히 고백했는데, 아버지가 겨우 7살짜리 자기를 날마다 새벽에 일찍 깨워서 새벽예배에 데리고 가기 때문에 괴로웠다고 한다. 그래서 아버지가 소나무에 올라가서 솔방울을 털 때마다 나무 밑에서 “하나님, 아버지가 나무에서 떨어져 다리 좀 다치게 해주세요. 며칠이라도 잠 좀 푹 자게요”라고 빌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류승규 목사는 나중에 장남을 목사가 되게 하려는 부친의 새벽기도 훈련을 통해 자기도 새벽에 일찍 일어나게 되어, 목회생활에 큰 도움이 되었다고 아버지께 감사했다는 것이다. 이처럼 류응현 씨는 철저한 신앙의 용사였다.

자루에 솔방울들이 가득 찬 것을 확인한 그는 나무에서 내려와 솔방울 자루를 어깨에 맨 후, 어둑어둑한 새벽길을 지나 교회로 갔다. 아버지는 교회 안으로 들어가 난로 불을 피우고 솔방울 땔감을 난로 속에 넣은 후, 밖으로 나와 종각에 가서 종 줄을 붙잡고 종을 쳤다.

“땡그랑 땡~, 땡그랑 땡~” 종소리를 들으며 어린 승규가 불이 꺼지지 않도록 솔방울을 난로 속으로 계속 집어넣었다. 종치는 것을 마친 아버지가 와서 솔방울을 집으면, 어린 승규는 따뜻한 마룻바닥에 누워 밀린 잠을 잤다. 새벽기도가 끝날 때까지 잠을 잘 잤다.

당시 일제가 한반도를 강점하여 지배하던 시대였고, 또 만주사변 등 전쟁을 일으켜 물자를 강제로 조달하게 하면서 경제적으로 매우 힘든 시절이었기 때문에 교회에 사찰도 없고, 땔감도 몹시 부족할 때였다. 그래서 겨울에는 주일 낮 예배 때만 난로를 잠시 피우기 때문에 새벽기도회 때는 너무 추워서 믿음이 약한 신자들은 나오지 못했다.

새신자인 류응현 씨도 겨울의 새벽기도회에 참석했다가 너무 추워서 사람도 적고 예배하기도 힘들어 그가 생각해 낸 것이 솔방울을 모아 새벽기도의 난로를 피운 것이다. 그래서 당시 함열교회 담임목사가 주일 낮 예배 때 이런 광고를 했을 것이다. “성도 여러분, 새 신자 류응현 씨가 새벽마다 솔방울 따다가 난로 불을 피우니 아주 따뜻합니다. 새 신자가 저렇게 열심히 봉사하는데, 신자들이 부끄럽지 않습니까? 모두 새벽기도회에 나와 열심히 기도합시다!” 이처럼 그는 믿는 날부터 봉사의 정신이 유별났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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