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 23:16~17)

감사의 계절입니다. 그러나 이 계절은 이리저리 굴러다니다 이내 한구석에 처박혀 널브러져 있는 낙엽만큼이나 쓸쓸할 수밖에 없는 때를 지나고 있습니다. 감사는 이런 계절적인 상황을 반전시키는 푸근함이 느껴지게 하기 때문에 참 좋습니다.

그러고 보면 감사는 우리의 마음을 푸근하게 하는 것만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을 흡족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라면 누구나 반드시 지켜야 하는 3대 절기 가운데 감사와 관련된 것이 두 개나 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과연 우연일까요?

그런데 참으로 안타까운 사실은 감사의 절기를 맞이하면서 정작 우리의 마음은 어떻게 절기를 맞이할까에 대한 생각으로 온통 혼잡스럽다는 것입니다. 더욱이 일반 신자가 아니라 목회자의 입장에서, 아니 농촌교회 목회자의 입장에서 감사 절기는 여간 부담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목회자가 직접 나서서 배추, 무, 호박 등 가을걷이를 장식해야 하는 상황이니 말입니다.

그러다 문득 본문의 말씀이 내 앞에 큰 활자가 되어 다가서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맥추절이건 수장절이건 한결같이 하나님은 “네가 수고하여…”라는 말씀을 하고 계십니다. 과연 누가 농촌목회자의 수고에 대해 입에 발린 말이라도 해준 적이 있던가요. 그런데 하나님이 나의 수고에 대해 직접 말씀해주시고 있다니 눈물이 핑 돌며 황공할 따름입니다.

사실 ‘수고’라는 단어는 그 동안 우리의 실생활 속에서 빈번히 사용하면서도 잘못 사용되던 것 중의 하나입니다. 수고라는 표현은 윗사람이 아랫사람의 힘쓰고 애쓴 것에 대한 격려와 치하의 의미이지요. 그런데 우리는 오히려 거꾸로 사용하는 것도 모자라 극존칭을 붙여서 ‘수고하셨다’고 윗사람에게 인사를 했으니 참 민망하기만 합니다.

아무튼 천지의 창조주이시며 살아 계셔서 역사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 개개인에 대해서 신경 써 주시고 그것도 모자라 우리의 수고에 대해 직접 거론하시며 인정해 주신다 하니 말로 다 할 수 없을 정도로 감사할 따름입니다.

자기를 인정해 주는 사람을 위하여 충성을 다하는 것이 세상의 도리라던데 과연 나는 나를 인정해 주시는 하나님께 무엇으로 보답할 수 있을지 곰곰이 생각해봅니다. 문득 사도 바울이 고린도전서 15장 10절에서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다”라고 고백했던 것이 기억납니다. 사도 바울이 주의 복음을 위하여 애쓰고 수고한 것으로 따지자면 다른 사도들에 비할 수 없을 것입니다. 내심 바울도 그런 자신의 수고에 대해 자랑하고 싶을 만도 합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자만이 알 수 있는 은혜의 표현입니다.

바울은 자신이 갖고 있는 복음에 대한 남다른 수고와 열정을 주께서 알아주신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확신 때문에 바울은 자신을 향한 핍박이 기다리고 있는 예루살렘을 향하여 죽을 것을 각오하면서 갈 수 있었습니다.

수고인사로 돌아가서, 그러면 수고라는 표현이 아랫사람에게 하는 윗사람의 치하와 격려라고 한다면 아랫사람으로서 윗사람에게 할 수 있는 표현은 무엇이 있을까? 여러 말 할 것 없이 ‘감사합니다’ 한마디로 다 끝날 것 같습니다. 덧붙인다면 ‘덕분입니다’라고나 할까요?

이 감사의 계절은 나의 수고와 땀 흘림을 인정해 주시는 하나님께 꿀 먹은 벙어리 같은 나의 입술을 움직여 화답하게 합니다. 그저 어떤 여러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요? 단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밖에는 없을 것 같습니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추수감사주일의 강단을 장식하는 농촌교회 목사의 마음은 한결 가벼워집니다.

곱게 분이 내려앉아 비비크림을 펴 바른 듯한 늙은 맷돌호박을 정성껏 농사지은 맛깔난 이천쌀 포대 위에 위에 올려놓습니다. 생채기 날까 조심조심 하나씩 따서 바구니에 담아온 꼬부랑 할머니 성도의 정성이 담긴 땡감을 그 옆에 살포시 놓았습니다.

감을 정성스럽게 따서 바구니에 담아온 할머니가 너무나 고마워 젊은 목사가 손 붙잡고 칭찬해 드리니 팔십을 넘어 홀로된 할머니의 볼에도 부끄러움이 묻어나며 좋아라 하십니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성도들이 땀 흘려 농사지은 농산물로 강단을 장식하고 돌아서는 나에게 하나님께서 수고했다고 등을 토닥거리시는 것 같습니다. 나는 하나님과 눈 맞추며 이렇게 화답합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이 종이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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