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봄의 시대
한국 사회는 지금 ‘돌봄의 대전환기’에 놓여 있다. 최근 조사에 따르면 신앙을 가진 교인들조차 절반 가까이가 외로움을 느끼며, 심리적·정서적 어려움으로 고통받는 이들도 꾸준히 늘고 있다. 외로움의 시대에 교회조차 안전지대가 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야말로 우리가 마주한 냉혹한 현실이다.
가족 돌봄 기능의 약화 또한 상징적이다. 예전에는 가정이 돌봄의 가장 기초 단위였지만, 이제는 병원·요양시설에서 생을 마감하는 일이 자연스러워졌다. 1인 가구의 증가, 경제적 압박, 그리고 세대 간 단절은 ‘함께 돌보는 문화’를 점점 더 어렵게 만들고 있다. 이 시대의 돌봄 요구가 더 이상 가정이나 여성에게만 맡겨둘 수 없는 이유다. 한국교회가 다시 ‘돌봄’이라는 단어를 붙잡아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한국교회 트렌드 2026’ 세미나에서 발표된 김수영 교수(평택대)의 강의는 돌봄의 전환이 필요한 이유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과거의 돌봄이 가진 사람, 시간 있는 사람, 여유 있는 사람이 약자를 ‘도와주는’ 시혜적 구조였다면, 이제 돌봄은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고 연결하는 관계적 행위로 이동하고 있다. 돌봄은 더 이상 특정한 몇 사람이 감당해야 하는 프로그램이 아니라, 공동체 전체가 함께 만들어가는 문화가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데이터는 이를 뒷받침한다. 교회 안에서 돌봄을 받은 경험은 작은 교회일수록 높게 나타났고, 신앙의 단계가 높을수록 돌봄을 더 경험했다고 응답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많은 성도들이 “돌봄이 필요하다”고 느끼지만 실제로 “무엇을 더 해야 하느냐”는 부담 앞에서 멈춰선다. 인식과 실천의 간극이 크다는 의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교회 구성원 모두가 ‘누가 돌볼 것인가’에 대해 비슷한 답을 제시하고 있다. 목회자든 성도든, 대부분이 “모든 성도가 서로를 돌보아야 한다”고 답한 것이다. 돌봄의 주체가 목회자에게 집중되던 시대가 지나고, 공동체 전체로 확장되는 변화를 보여준다. 젊은 세대일수록 수평적 돌봄을 선호한다는 조사 결과 역시 이러한 변화를 지지한다. 교회는 이제 ‘성도 간의 돌봄’이라는 새로운 가치에 응답할 준비를 해야 한다.
김수영 교수가 제시한 방향은 명확하다. 돌봄은 거창한 사업이 아니라, 일상적이고 작은 행동을 통해 만들어지는 문화다. 경청, 공감, 짧은 격려의 말, 누군가의 어려움을 함께 나누는 소그룹의 힘이 돌봄의 온도를 끌어올린다. 목회자를 위한 돌봄 역시 중요하다. 돌보는 사람도 지치고 고갈될 수 있기에, 목회자가 스스로를 들여다보고 회복하는 과정은 교회 돌봄 시스템의 핵심이 되어야 한다.
궁극적으로 돌봄은 연결이다. 외로움이 고립에서 시작된다면, 돌봄은 연결에서 피어난다. 교회가 돌봄 공동체로 서는 순간, 그 연결은 단순한 인간적 위로를 넘어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정체성을 회복하는 길이 된다.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는 말씀은 바로 이 시대 돌봄 신학의 출발점이다.
오늘의 한국 사회는 돌봄을 절실히 필요로 한다. 그리고 교회는 그 돌봄을 가장 잘 실천할 수 있는 공동체다. 돌봄을 다시 배우고, 다시 실행하며, 다시 문화로 만드는 일-그것이 한국교회가 시대 앞에서 감당해야 할 새로운 사명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