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느 해 케임브리지대학교 신학 과목 학기말 고사 논술시험. 주제는 ‘예수께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기적에 담긴 종교적이고 영적인 의미를 서술하라’였다고 한다. 강의실 안에 있는 모든 학생이 저마다 지식과 지혜를 다하여 열심히 답안지를 작성해나갔다. 그런데 한 학생만은 단 한 글자도 적지 않은 채 한참을 창밖의 경치만 바라보고 있었다. 아예 포기한다는 것일까.

▨… 빨리 또는 늦게 답안지를 모두 제출한 뒤 아직도 창밖만 바라보고 있는 학생을 향하여 교수는 “단 한 줄이라도 적어내야 낙제는 면하지 않겠는가”라고 걱정되는 부분을 진지하게 물었다. 이윽고 학생은 펜을 들어 답안지에 “물이 저를 만든 이를 뵈오니 얼굴이 붉어졌더라(Water saw its Creator and blushed)”라는 한 줄의 문장을 썼다. 창조주이며 소유권자인 주님을 만난 물이 부끄러움에 얼굴을 붉혔다는 표현은 신학과 문학의 경계를 허무는 절묘한 정답이었지 않을까.

▨… 19세기 영국의 낭만주의 시인 바이런(George Gordon Byron. 1788~1824)의 대학 시절의 일화로 알려진 이 이야기는 그 진위에 대하여 갑론을박이 그치지 않지만, 실화라고 하면 “역시 바이런!”하는 감탄사가 절로 나올 것이고 누군가가 꾸며낸 이야기라 하더라도 바이런의 이름에는 결코 손상을 주거나 흠집을 내지는 않을 명문장이라 평가받을 만하지 않은가.

▨… 일교차가 커지면서 푸르던 잎새들이 고운 단풍으로 물들고 있다. 희망으로 움이 돋고 야망으로 푸르러진 잎이 계절을 거치면서 붉게 물드는 것은 그 잎의 왕성했던 지난날의 푸르름을 부끄러워하는 것은 아닐까. 단풍이 드는 것처럼, 나이가 드는 일은 부끄러움을 앎. 앎은 아름다운 깨달음. 깨달음은 껍질이 깨지고 모난 부분이 닳아짐. 깨지고 부딪쳐 고운 모양과 색깔이 한데 어우러지면 아름다운 세상이 이루어지겠지.    

▨… 은혜로 구원을 받은 자가 남을 향해 얼굴 붉힐 일이 뭐 있겠는가. 십자가에서 목숨까지 내어주신 구세주 앞에서 얼굴이 붉어져야지. 예수의 피 값으로 세우신 교회가 세상을 향해 차별하고 정죄하며 공격할 자격이 있겠는가. 나 같은 사람, 우리 같은 이들로 그분의 몸을 삼았으니 그저 두 팔 벌려 끌어안고 사랑만 하라고 가을 단풍이 소리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저작권자 © 한국성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