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얼대는 칠순 동생, 달래주는 팔순 오빠
양로원에 가면 아름다운 모습들을 많이 봅니다. 양로원 스텝들이 최선을 다해 거주하시는 분들을 세심하게 돌봅니다. 거주하시는 분들끼리 서로 아끼는 모습입니다. 걸을 수 있는 분들은 휠체어를 타신 분들을 밀고 가십니다. 혼자 서기 힘든데도 기꺼이 돕습니다.
특히 식사시간이 되면 그런 장면을 자주 봅니다. 양로원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돼 서먹해 하는 분들이 있으면 좀 오래되신 분들이 챙깁니다. 친절히 다가가 이것저것 안내합니다. 혹 외로움에 빠져 눈물 흘리는 분이 계시면 다가가 등 토닥이며 위로합니다. 그리곤 친구가 되어줍니다. 인종과 피부색에 관계없이 그리하십니다.
글 쓰고 있는 지금도 눈에 선한, 매주 경험하기에 기억이 생생한 두 분이 있습니다. 여든이 훌쩍 넘은 분과 그 분 동생 이야기입니다. 오빠는 매주 목요일 예배에 오셔서 동생과 함께 예배드립니다. 한 주도 거르지 않고 그리하십니다.
일주일 내내 기다린 동생은 두 눈에 기다림을 가득 담고 있습니다. 행여 오빠가 보이지 않으면 눈물이 주르륵 떨어집니다. 어쩌다 늦게 오기라도 하면 ‘어디 있냐?’ ‘언제 오냐?’고 채근합니다. 오빠가 눈에 들어오면 침울했던 얼굴은 꽃피듯 환하게 웃습니다. 그리곤 어서 오라고 두 손 들어 손짓합니다.
걷기 힘들어 무거운 몸 이끌고 천천히 동생에게 온 오빠는 미소 한 번 쓱 짓고 의자를 당겨 앞에 앉습니다. 그리고는 두 손을 꼭 잡아줍니다. 그제야 동생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가끔 이야기 도중 오빠가 벌떡 일어납니다. 그리곤 황급히 밖으로 나가 차를 타고 갑니다.
약 30분 후 오빠는 한가득 이것저것 사 오셨습니다. 그리곤 탁자 위에 쏟아놓고 하나하나 보여줍니다. 어떤 것을 보곤 동생이 너무 좋아합니다. 하지만 어떤 것을 보고는 신경질적으로 오빠를 쳐다봅니다. 그것 하나 몰라서 이딴 걸 사왔냐는 표정입니다.
10년 훌쩍 뛰어넘는 나이차. 그분들이 태어났을 때 당시 사회를 생각해보면 두 분의 사이가 왜 각별한지 조금 이해가 되기도 합니다. 오빠는 장남, 여동생은 막내입니다.
어느 날 동생이 거친 행패를 보인 게 미안했는지 동생과의 관계 이야기를 슬쩍 하십니다. 부모님을 대신해서 거의 동생을 키우다시피 한 어렸을 적 상황. 가족의 깊은 내막은 모르겠지만, 당시 시골의 사회적 상황을 고려하면 그림이 그려집니다.
여러 형제자매 중에서 유독 큰 오빠를 따른 막내 여동생. 어려서부터 따르던 것이 정이 되어 지금까지 이어진 겁니다. 오빠는 지치고 힘든 노년의 삶에서도 동생을 살핍니다. 사랑 가득 담고, 최선을 다해서. 툴툴대고 찡찡대고 칭얼거려도 아랑곳하지 않고 보듬습니다. 그저 끌어 안습니다.
두 분을 보면서 참으로 많은 것들을 배웁니다. 가족, 자매, 형제, 오누이가 무엇인지 새삼 많이 생각합니다. 한편 부럽기도 하고, 다른 한편은 저리 살지 못하는 모습에 자책도 합니다.
형제자매뿐 아니라 온 가족이 함께 어울려서 사는 삶. 그런 삶에 하나님께서 복을 약속하셨습니다. 점점 파편조각으로 변하는 현대인의 삶. 각자도생의 현실에 밀려 개인의 이슈가 우선되는 현실. 세대가 각박해서 그런지 우리의 마음은 점차 작은 조각으로 쪼개지는 듯합니다.
그런 조각들이 우리의 삶을 결정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가족의 정은 엷어지고 개인의 욕구와 필요만 강조되고 우선되는 듯해서 마음이 아픕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