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증거와 헌신의 사역

병을 치료하고 삶을 꾸려가느라 여기저기서 빌린 돈이 눈덩이처럼 불어나 홍 집사의 가족은 또다시 길에 나앉게 되었다. 다행히도 홍기득의 처지를 안 교회에서 그를 교회의 사찰로 일하게 해주었다. 그리하여 아들 넷이 교회 사찰 일을 하고 홍 집사 부부와 막내는 종로 3가에 양복수리와 세탁소를 겸한 사업을 시작했다. 사업은 잘되어 2년쯤 지나 모든 빚을 갚을 수 있었다. 또 교인들의 기도와 변 권사의 안수기도로 홍기득의 병도 완치되었다. 그를 검진한 병원에서는 기적이라고 말했다.

홍기득은 1964년 3월 24일 신흥교회에서 장로장립을 받았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였다. 그리고 한번 쏟아진 하나님의 은혜는 계속되었다. 어느 날 친구의 권유로 고향인 양재동에 있는 집을 사게 되었다. 집을 사고 세를 놓은 지 얼마 후 말죽거리를 기점으로 경부고속도로가 놓이기 시작하면서 이 지역의 땅 값과 집값이 폭등하기 시작했다. 홍 장로는 이후로 물질의 복을 받기 시작했다. 그러나 행복한 세월을 보내던 중 또 한 번의 시련이 왔다.

어느 겨울에 온몸에 엄청난 통증을 느끼며 갑자기 전신이 마비가 되면서 쓰러졌는데, 그 길로 등이 구부러지면서 꼼짝 못하는 반신불수가 되고 말았다. 척추 뼈 3개가 주저앉은 가리에스였다.
인간으로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에 처했다. 홍 장로가 전심전력으로 기도했고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났다. 사지를 움직일 수 있고 구부러진 허리가 펴졌다.

수술을 기다리며 “나의 할 것이 무엇입니까?”라는 제목을 정하고 기도하는데 “복음을 증거하라”는 응답도 받았다. 이에 홍 장로는 잠자는 시간과 밥 먹는 시간을 아껴 지팡이를 짚고 세브란스 병동, 각 병실마다 찾아다니며 복음을 증거했다. 그의 행동을 지켜본 의사와 간호사들 사이에서는 ‘홍전도사’로 통할 정도였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홍 장로는 이후 병원선교에 진력했다.

홍 장로에게 한 번의 시련이 더 닥쳤다. 아내가 장암으로 죽는다는 것이다. 홍 장로는 기가 막혔고 밤낮 하나님께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뼛속 깊이 회개하고 일편단심 주님을 위해 살겠다는 결심의 기도도 했고 어떤 때는 버스 안에서 기도하다가 소매치기에게 몽땅 가진 것을 털린 일도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홍 장로에게 또 다시 주님의 음성이 들려왔다. “안심하라, 너의 처는 죽지 않는다.” 며칠 후 수술실을 들어간 지 얼마 안 되어 의사가 나오더니 아내의 몸 안에 암이 없어졌다며 기적이라고 하는 것이었다. 홍 장로는 하나님의 은혜에 다시 한 번 감사를 드렸다.

홍기득 장로는 하나님께 받은 복을 교회와 교단의 봉사로써 보답했다. 주님께 받은 복을 주님을 위해 맘껏 사용했다. 참으로 많은 주님의 흔적을 남겼다. 평신도 지도자 한 사람의 힘이 그렇게도 큰 파장을 일으킬 수 있을까 하고 놀라게 된다. 홍 장로가 교단과 교계발전에 이룩한 큰일들을 열거해본다.   

첫 번째는 무엇보다 부흥대책위원회 모금 운동과 증식이 될 것이다. 1969년 제24회 총회에서 장로 20명으로 ‘교단부흥대책위원회’를 조직 발족시키고 1억 목표로 모금을 시작했다. 중진 장로들은 전국교회를 방문하여 목회자와 평신도 지도자를 설득하고 모금을 했다.

7년여 동안 6천만 원을 모금했다. 당시 총회본부를 무교동에서 이전해야한다고 생각하고 있었고 홍 장로가 이 사실을 중시하고 1976년 강남일대의 대지를 물색하여 서초동의 3321평을 매입했다. 반대하는 분들도 있었으나 홍 장로가 설득하여 계약했고 그것이 증식이 되고 계속 모금하여 1억 2천만 원이 되었다. 그렇게 총회본부 건축에 소요된 4억5천만 원 중 27%를 감당하게 된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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