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가 그 형제에게 행하려고 꾀한 대로 그에게 행하여 너희 중에서 악을 제하라. 그리하면 그 남은 자들이 듣고 두려워하여 이 후부터는 이런 악을 너희 중에서 다시 행하지 아니하리라. 네 눈이 긍휼히 보지 말라. 생명은 생명으로,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손은 손으로 발은 발로니라.”(신명기 19:19-21)

▨… 악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자세는 보복이 먼저일까, 용서가 먼저일까? 흔히 보복은 정의로움으로 이어지고 용서는 사랑으로 연결되어지는 것으로들 이해한다. 가령, 사람을 죽인 자를 체포하여 사형이나 무기징역을 언도하는 법은 살인자에 대한 적절한 응보의 처벌이 곧 정의라는 판단에 서 있다. 이 때의 처벌은 사적인 복수가 아니라 악행에 대한 반작용이며 가혹한 위협력을 통하여 보다 넓은 경계적 예방효과를 목표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 이러한 탈리오의 법칙(lex talionis 동해보복법)은 함무라비시대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형법의 기초가 되고 있다. 같은 형태의 복수가 곧 정의의 구현이라고 이해되어 왔던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만고불변의 법칙 같았던 탈리오의 법칙을 깨뜨리셨다.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또 너를 송사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마태5:39).

▨… 예수님은 우리에게 사랑이 내용물이어야 하는 정의의 구현을 일깨워 주셨다. 사람의 변화가 정의임을 깨닫게 해 주신 것이다. 틸리히(P.Tillich)에 의하면, 아무리 정의구현을 위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사랑이 배제된 힘(권력)의 구사는 폭력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우리 식으로 표현한다면 자식을 향하여 드는 매가 사랑을 바탕으로 한 것이어야지 등가의 응보를 기반으로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 부유한 선주였던 마르키온(Marcion)은 초대 로마교회에 막대한 헌금을 드려 큰 영향력을 갖게 되었다. 그 힘을 바탕으로 해서 그는 구약적인 동해보복의 원리와 예수님의 사랑의 용서는 도저히 조화될 수 없음을 주장하였다. 정녕 그런 것일까, 오늘의 우리교단은 또 하나의 마르키온주의자로 전락하고 있는 것일까? 사랑의 용서는 사라지고 응징과 보복만 난무하고 있다. 키에르케고르의 ‘신앙은 패배 가운데 승리를 찾는다’는 일침이 등골을 서늘하게 하지도  않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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