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세기 독일의 마틴 루터가 인간의 고행이나 선행으로 구원의 기쁨을 얻지 못하고 갈등하면서 몸부림치다가 로마서 주석을 통해서 예수를 믿는 자가 의인이 되며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다는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천주교의 행위 구원 신학을 거부하고 오직 믿음 신학 곧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이 가능함을 깨닫고 마틴 루터는 성자신학을 세웠습니다(롬 1:17).
그 후 루터보다 26년 뒤에 태어난 프랑스의 존 칼빈이 마틴 루터의 성자신학의 바탕 위에 그렇다면 과연 예수를 누가 믿을까 하고 고민하며 갈등하고 괴로워하다가 로마서를 통해서 하나님 아버지가 미리 아시고 예정하신 자만이 구원받을 수 있다는 확신으로 존 칼빈은 성부신학을 세웠습니다(롬 8:28-30).
그러자 유럽교회는 천주교회로부터 탈출하여 개혁교회의 급속한 부흥을 가져왔지만 하나님 아버지가 선택한 사람이 예수를 믿기만 하면 무조건적으로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어거스틴과 칼빈의 이중예정설을 받아들여 방탕과 타락을 초래하므로 교회가 술집으로 바뀔 지경에까지 이르렀습니다.
18세기 영국교회와 사회가 멸망으로 치닫고 있을 때 세계 최고의 명문 옥스퍼드대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한 옥스퍼드대학 교수 출신인 존 웨슬리가 미국 조지아주 선교사로 갔지만 선교에 실패하고 돌아와서 낙심하고 우울증에 자살의 충동까지 느끼며 괴로워하던 중 1738년 5월 24일 저녁 8시 45분경 지성적이지 않고 감성적이던 모라비안 교도들의 소그룹 예배에 억지로 참석했습니다.
존 웨슬리는 모라비안 교도들이 루터의 로마서 주석 서문을 낭독하는 것을 듣고 불같은 성령을 체험하면서 가슴이 뜨거워지고 낙심과 갈등의 죄책감이 사라지며 하나님의 자녀라는 구원의 확신을 얻고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성령께서 증거하신다는 사실을 깨닫고 성령신학을 세우게 되었습니다(롬 8:16).
16세기 이후 기독교의 3대 신학은 독일의 마틴 루터의 성자신학, 프랑스의 존 칼빈의 성부신학, 영국의 존 웨슬리의 성령신학입니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인들에게 보낸 편지 가운데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영원히 함께 있을지어다”(고후 13:13)라는 사도 바울의 성경 말씀을 독일의 마틴 루터와 프랑스의 존 칼빈과 영국의 존 웨슬리가 깨닫게 되었습니다.
루터의 성자신학과 칼빈의 성부신학에서 종교개혁이 멈추었더라면, 개신교는 목숨 걸고 투쟁한 루터의 종교개혁 시도에도 불구하고 칼빈의 왜곡된 예정설로 인해 목회자와 교회 성도들이 방종과 타락으로 치닫고 있을 때 존 웨슬리는 하나님의 예정을 인정하면서도 인간의 자유의지에 대한 책임과 성결한 삶을 보완함으로 구원론을 완성하였기에 존 웨슬리를 종교개혁의 완성자요 개신교의 영원한 3대 스승이라 할 것입니다.
존 웨슬리를 영적 롤모델로 삼는 성경 한 책의 사람, 성령 충만한 사람, 그리스도인의 완전을 추구하는 삶 이야말로 세계적인 웨슬리언 복음주의 성결교회의 위대한 자산이며 하나님의 놀라운 은총(Amazing Grace)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