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말은 어려운 여건 중에도 전주간호고등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할 정도로 인재였다. 그녀의 중심을 보시고 때마다 일마다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였다. 졸업 후 그녀는 교장 선생의 강권적인 호의로 학교와 병원(도립병원)에 남았다. 주로 야간에 근무하고 주간에는 양재학원을 다니며 양재 기술을 익힐 수 있는 기회도 허락받았다.
양재학원을 택한 것은 바느질에 소질이 있었고, 직접 옷을 만들어 입는 것만큼 절약하는 법도 없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낮에는 양재기술을 배우고, 야간에는 병원 근무를 했다. 야간 근무가 끝나면 양재실습을 하거나 간호학이나 어학 등을 공부하고, 틈틈이 성경공부도 했다. 기껏해야 두서너 시간밖에 잘 수가 없었지만 피곤한 줄을 몰랐다. 원하는 공부와 일을 함께할 수 있다는 기쁨이 그만큼 컸다.
그녀가 예수님의 삶과 가장 가까웠던 시기이기도 했다. ‘예수님을 닮는 삶’. 갓 스무살 고개마루를 넘어서는 그녀의 마음과 생각을 온통 사로잡았던 주제였다. ‘어떻게 하면 예수님처럼 이웃을 사랑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예수님처럼 땀이 피가 되도록 기도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예수님처럼 강력히 복음을 전파할 수 있을까?’ 그녀의 마음에는 이런 거룩한 고민과 소망으로 가득했다.
하나님을 향한 자신의 사랑이 늘 부족하고 모자라는 것만 같았다. 이웃 사랑과 복음 전파에 모든 것을 바치셨던 예수님, 그 때문에 제대로 먹지도 자지도 입지도 못하셨을 예수님이 늘 떠올랐다. 그런 예수님을 생각하면 좋은 음식과 잠자리와 의복을 갖춘 자신의 삶이 그저 송구스럽기만 했다.
예수님의 삶을 좇아가는 생활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파마 같은 머리 손질은 꿈도 꾸지 않았다. 화장도 전혀 하지 않았다. 기본적인 옷 한두 벌로 만족했다. 그런 것에 신경 쓰다 보면 신앙생활이 게을러지지 않을까, 세상에 속한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잉태하여 결국 유혹과 죄에 물들지 않을까 하는 걱정 때문이었다.
오늘의 시선으로는 너무 고지식하고 맹목적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그녀는 그것을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라면 당연히 지켜야 할 본분이자 도리라고 여겼다. 그래서 그녀는 그런 삶에 대해 결코 후회하지 않았다. ‘예수님을 닮는 삶’은커녕 ‘예수 그리스도를 따름’에도 가성비를 따지는 오늘의 세태와는 사뭇 달랐다.
먹고 마시는 것도 절제했다. 아침 한 끼만 먹고, 점심과 저녁은 금식했다. 의식주를 최대한 검소하게 하고, 성경 묵상과 기도에 더욱 열심을 냈다. 형편이 어려워서 그런 것이 아니었다. ‘향유 옥합을 깨뜨렸던 여인’처럼, 그리스도를 위한 자발적 헌신이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그녀를 복되게 하시고, 하늘에 속한 것들으로 아름답게 치장해 주셨다. 그녀의 영혼이 맑아지게 하셨고, 믿음의 눈을 열어주셨다. 성령이 거하시는 전으로 삼아주신 것이다. 그 행복과 평안함은 무엇에도 비길 수 없는 것이었다.
양재학원을 수료하던 날이었다. 원생들의 졸업비가 없어져 소란스러웠다. 좌중을 둘러 보는데, 어떤 원생이 범인이라고 하나님께서 알려주셨다. 그 원생의 체면을 생각해서 그녀는 하나님의 지혜를 구했다. 그래서 모두 없어진 졸업비만큼의 종이돈을 만들어 신문지에 싸서 내기로 하고 실행했지만, 범인은 졸업비를 돌려주지 않았다.
그래서 마취제 실험, 곧 마취 상태에서 무슨 말을 하는지 보자고 제안했다. 범인으로 지목된 그 원생을 제외하고 모두가 동의했다. 끝까지 버티던 그 원생은 결국 원장 앞에서 모든 것을 자백하고 용서를 빌었다.
하나님께서는 온 맘 다해 그분을 찾고 구하며 따르는 자에게 영광과 권능을 드러내 주신다. 하나님의 역사는 끝나지 않았으며, 하나님께 합당한 사람을 통해 오늘도 그분의 역사를 흥왕하게 하신다.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