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의 능력 안에 있는 설교 ③

정재웅 박사
정재웅 박사

성령 없이는 설교할 수 없으며, 성령 없이는 설교가 들릴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설교에서 성령이 어떤 사역을 하는지 배울 기회는 매우 드물다.

설교와 관련해 성령을 다루는 북미권의 대표적 저작은 제임스 포브스의 『성령과 설교』(The Holy Spirit and Preaching)와 그렉 하이슬러의 『성령이 이끄는 설교』(Spirit-led Preaching) 정도이다. 특히 하이슬러는 다음과 같이 성령이 설교에 역사하고 있는 10가지 방식을 소개한다.

첫째, 성령의 영감으로 본문을 기록함; 둘째, 예수 그리스도께로 설교자를 회심시킴; 셋째, 말씀을 전하도록 설교자를 부르심; 넷째, 말씀대로 살도록 설교자의 인격을 성화시킴; 다섯째, 설교 연구에 있어 설교자의 마음과 생각을 조명하심; 여섯째, 하나님 말씀을 선포할 때 설교자에게 능력을 부여함; 일곱째, 예수 그리스도를 주와 중보자로 증거하심; 여덟째, 말씀을 듣고 받는 청중의 마음을 여심; 아홉째, 청중의 삶 속에서 말씀을 적용함; 열째, 신자의 성령 충만한 삶 속에서 나타난 지속적인 열매.

하이슬러는 설교의 전 과정에서 성령께서 어떤 역할을 하시는지를 다루었다는 점에서 기여한 바가 크다.

그러나 성령을 여전히 능력 있는 설교 혹은 열정적인 설교를 위한 도구 혹은 수단으로 오해할 수 있게 표현하는 점과 성령을 이야기식 설교의 대척점에서 다룬 점은 아쉽다. 그는 “강단에서 신학은 떠나고, 말 잘하는 스토리텔러가 들어왔다. 그 결과로 우리는 성령의 능력으로 무장된 설교자가 되기보다는 효과적으로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설교자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설교자들을 전 세대에 걸쳐 강단에서 많이 보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가 남침례교의 전통적인 강해설교를 주장하는 학자임을 감안해도 이는 성령과 이야기식 설교에 대한 편협한 이해에 따른 오해로 보인다. 이야기식 설교는 단순히 인간 중심적 커뮤니케이션 기술이 아니다. 그것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소통 방식을 반영한 것이며, 특별히 성령의 소통 방식을 구체화한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칼 바르트에 따르면 삼위일체 하나님은 상호 소통하시는 하나님이다. 그리스도는 하나님 우편에서 중보하시며, 성령은 우리를 위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간구하신다. 성부 하나님은 아들 안에, 아들은 아버지 안에 거하시며 끊임없이 커뮤니케이션하신다. 삼위일체 하나님은 서로 존중하며 소통하시며 친교(communion)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이야기식 설교는 이러한 삼위일체 하나님의 소통 방식을 반영한 것이다. 설교자는 청중에게 일방적으로 강요하거나 훈화하려 하기보다 청중을 존중하고 소통하며 친교해야 한다는 것이 이야기식 설교의 핵심 철학인데, 이는 다름 아닌 삼위일체 하나님의 소통 방식인 것이다.

특별히 이는 성령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방식을 반영한다. 성령께서 우리를 깨닫게 하시고 가르치실 때 어떠한 방식으로 하시는가? 성령은 어떻게 우리를 회심시키는가? 베드로의 회심, 삭개오의 회심, 바울의 회심 등 성경에 나오는 회심 기사의 공통점은 이야기 속에서 회심했으며, 그들의 회심은 이야기로 전승되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성령은 머릿속에 아이디어를 번뜩 떠올려서 혹은 조목조목 우리 죄목을 지적해서 회심시키지 않으신다. 오히려 이야기하신다.

더하여 성령은 이야기를 만들어 가신다. 회심했으나 연약함으로 넘어지고 실패하는 우리를 다시 일으키시고 회복하셔서 하나님을 닮아가도록 성화의 길로 이끄신다. 이 과정에서 일어난 일들이 하나하나 이어지며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설교자와 회중은 성령께서 이야기를 만드시는 역사 속에서 하나님의 사람들로 빚어지며 형성되어 간다.

찰스 캠벨 등 탈자유주의 설교학자들이 말하는 설교의 형성적 힘은 이러한 성령의 이야기 만들어 가심으로부터 나온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설교는 성령께서 이야기하시며 이야기를 만드시는 계시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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