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지 뮬러는 영국 브리스톨에서 평생 1만명이 넘는 고아를 돌보며 단 한 번도 후원 요청을 하지 않았던 사람이다. 그는 오직 하나님께만 기도했고, 필요한 모든 것이 놀랍도록 채워졌다. 평생 5만 번이 넘는 기도 응답이라니,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묻고 싶지만, 그 질문을 꺼내는 순간 믿음이 적은 것이 들통날까 두려워 입을 다문다.

▨…기도(祈禱)는 베어내고 깎아내는 고통, 피 흘리는 희생이 담긴 글자다. 기(祈)는 제단에 도끼를 올린다는 뜻이다. 도끼는 베고 깎고 피 흘리게 하는 도구다. 도(禱)는 제단에 목숨을 바쳐 아뢰는 것이다. 기도는 자신을 베어내고 피 흘리는 고통, 삶의 일부를 깎아내는 희생, 심지어 목숨까지 걸어야 하는 제사다. 우리가 드리는 기도가 사실은 생명을 거는 일이었다니, 지금까지 싸구려 기도를 해온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게 된다. 하나님을 마치 소원을 들어주는 자판기처럼 여기고, 버튼만 누르면 응답이 떨어질 것이라 믿는 것은 뮬러의 기도는 아니다.

▨…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보여주신 기도는 그저 입술의 간구가 아니었다. 권해생 교수는 『십자가 새롭게 읽기』에서 “예수님의 마지막 숨결은 기도의 절정이었다. 그분은 십자가 위에서 하나님께 자신을 온전히 드림으로 기도를 완성하셨다”고 말한다. 피 흘리는 죽음 자체가 인류를 위한 가장 위대한 중보기도였다면, 그것이 억지일까. 자신의 뜻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한 그 삶이야말로 기도의 본질이 아니었을까.

▨… “나는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기 위해 먼저 내 자신의 뜻을 내려놓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배웠다. 열 번 중 아홉 번은 이 단계에서 실수가 일어난다.” 『조지 뮬러 자서전』 중에서. 그의 기도는 입술이 아닌 고뇌의 흔적에서 찾을 수 있다. 고아들을 위한 희생적 삶이 곧 하나님께 드리는 가장 진실한 기도였다고 말한다면, 부정할 성결인이 있을까.

▨… 올해 전국장로회 수양회에는 1,500명이 넘는 장로 부부가 모였다. 교단의 기둥이라 할 만한 이들이 한자리에 모인 만큼, 기도의 열기도 예사롭지 않을 것이다. 단순한 수양이 아니라, 교단의 숨결이 모이고 방향이 정해지는 자리다. 그들이 자신의 필요를 내려놓고, 생명을 걸고 기도한다면 이루지 못할 일이 있겠는가. 성결인의 기도는 결코 가벼워서는 안 된다. 기도는 그저 간구가 아니라, 결단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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