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크로스비 유적을 보고 와서

지난 9월 18일 뉴욕한빛교회 윤종훈 목사 부부의 안내를 받으며 찬송작가 패니 제인 크로스비(Fanny Jane Crosby)의 유적지를 탐방했다. 뉴욕에서 승용차를한 시간 정도 타고 가자 커네티컷 브리지포트에 있는 패니 크로스비의 묘소에 당도했다. 그곳에는 남북전쟁의 수많은 전사자들이 함께 잠들어 있었다. 크로스비의 묘소에 그의 대표적인 찬송가사가 새겨져 있었다.

“예수를 나의 구주삼고 성령과 피로써 거듭나니/ 이 세상에서 내 영혼이 하늘의 영광 누리로다./ 이것이 나의 간증이요 이것이 나의 찬송일세./나 사는 동안 끊임없이 구주를 찬송하리로다.”

우리 일행은 이 찬송을 힘차게 불렀다. 95년간 평생을 장님으로 살면서도 “천사들 왕래 하는 것, 하늘의 영광, 구속한 주님만 보인다!"는 찬양에 가슴이 울컥했다. 그녀가 가신지 100여년이 지났는데도 순례자의 발길이 계속 이어진다고 한다.     

패니 제인 크로스비는 1820년 3월 24일 뉴욕 주 푸트남 카운티(Putunam County) 사우스이스트(Southeast)에서 태어났다. 생후 6개월 때 눈병치료의 과실로 실명하여 생을 마감한 95세까지 빛이 없는 삶을 살았다. 그녀의 아버지도 그녀가 생후 1년도 안되어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그녀의 고독과 슬픔을 더 컸다.

그녀는 8세 때부터 시를 쓰기 시작했고 15세가 되어 뉴욕맹인학교에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 그녀가 32세 때 같은 맹인학교의 교사이며 음악가인 알렉산더 반 알스타인(Alexander Van Alstyne)과 결혼해서 서로 격려하면서 살았다. 그녀는 육체적으로 어둠 속에서 살았지만 영계는 더욱 밝았고 그로 인해 많은 찬송가를 지어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었다고 했다.

그녀는 95년의 생애를 보내면서 8,000여 편의 찬송시를 지었다. 1902년 남편과 사별한 후 어릴 때 자라던 고향으로 돌아와 13년간 찬송시를 작사하다가 1915년 2월 11일 잠자리에서 고요히 하늘나라로 갔다. 그의 묘소 근처에는 그가 평생 펼쳤던 맹인과 빈자의 구호소기관건물이 있다. 그의 찬송가작사 인세와 강연수입 등 일체를 구호사업에 쓰고 갔다.

어느 날, 내프 여사가 그녀에게 자신이 작곡한 곡에 가사를 붙여줄 것을 의뢰했다. 내프 여사는 피아노에 앉아 자작곡을 쳤다. 크로스비가 그 곡조를 들으며 지난 주 교회에서 목사님께 들은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악한 양심으로부터 벗어나고 몸은 맑은 물로 씻음을 받았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써 하나님께 나아가자(히 10:22)”라는 말씀이 떠올라 즉흥적으로 “예수를 나의 구주 삼고…”의 찬송시를 썼는데, 내프 여사의 곡과 너무도 잘 어울렸다. 그녀의 찬송작시 ‘나의 영원하신 기업’ ‘주가 맡긴 모든 역사’ ‘나의 갈길 다가도록’ 등 우리 찬송가에도 21곡이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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