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2년 한일 월드컵 16강전, 한국팀은 세계 일류 팀인 이탈리아와 맞서 있었다. 골문을 향해 돌진하던 이탈리아 공격수 프란치스코 토티는 송종국의 태클에 걸려 쓰러졌다. 바이런 모레노 심판은 토티의 할리우드 액션으로 간주하고 옐로우 카드를 제시했다. 이어서 경고 누적으로 퇴장을 명령했다. 결국 한국팀이 승리했고 그 승리는 월드컵 사상 11대 이변으로 기록되었다.

▨… 훗날 모레노 심판이 마약 복용 혐의로 체포되었을 때 이탈리아팀의 감독이었던 지오바니 트라파토니는 “모레노는 마약에 취한 채 심판을 보았을 것”이라고 비아냥댔었다. 모레노의 레드 카드가 정당한 것인지, 아닌지는 축구 전문가들이 판단할 일이지만 모든 스포츠에는 심판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 심판의 권위는 절대적이다. 오죽하면 ‘오심도 경기의 일부’라는 말이 있겠는가.

▨… 경기의 규칙을 적용하는 것과 인간의 죄를 판단하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경기에서는 오심도 경기의 일부일 수 있겠지만 인간의 죄를 판단하는데는 오심이 있어서는 안된다는 것이 증거주의의 일관된 주장이다. 법철학자 라드부르흐(G.Radbruch)가 명쾌히 밝혔다. “유죄인 자는 처벌되어야 한다. 동시에 죄가 입증된 자만이 유죄 선고를 받아야 한다. 유죄이지만 입증되지 않은 자의 무죄선고는 보장되어야 한다.”

▨… 모든 심판에는 오판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피고인이 유죄인가 무죄인가를 분명하고도 확연하게 아는 것은 피고인 자신과 신(神)뿐이다’라는 말이 그것을 지적해 준다. 그 오판을 막기 위해 중세 유럽에서는 ‘물의 신판(神判)’을 행했다. 무죄를 주장하는 용의자의 손발을 묶어 물속에 던진 것이다. 죽으면 무죄로 인정되고 살아나면 유죄로 단정해서 처형한 끔찍한 재판이다.

▨… 목사가, 장로가 그 소속 교단으로부터 징계를 받는다는 것은 도둑을 처벌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마갈릿(A.Margalit)은 “품위 있는 사회는 제도가 사람들을 모욕하지 않으며 제도를 통해 그 권한 아래에 있는 사람을 존중하는 사회”라고 규정하였다. 교단 여기저기서 억울하다는 호소가 줄을 잇고 있다. 결코 품위 있는 사회의 모습이 아니다. 전권위나 교단지도부는 권위에만 연연하는 축구 경기의 심판일 수 없기에 재고를 기대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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