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덴에서 추방돼 결핍의 세상으로 가면서
나의 풍요는 다른 이의 궁핍이 될 수 밖에
주님이 죄의 문제 해결 않는 한 답은 없어

                                      박승로 목사(이작교회)
                                      박승로 목사(이작교회)

빌 게이츠가 하버드대학교 졸업식에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앞으로 전문적인 성취보다 세상 불평등 해결을 위해 얼마나 잘 봉사했는지를 기준으로 자신을 평가하기 바란다” 그리고 “희망이 없다고 생각하는 회의론자들은 ‘불평등은 태초부터 있었고, 지구의 종말이 올 때까지도 우리와 함께 존재할 것’이라고 말하지만 나는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 또한, 그는 ‘창조적 자본주의’로 지구의 문제를 극복할 수 있다고 역설했습니다. 

과연 그런가? 희망이 없다고 생각하는 회의론자들은 배격합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종말이 오기 전에는 이 땅에선 진정한 평등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은 죄로 말미암아 오염되어 불평등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죄로 인해서 에덴의 풍요에서 추방되어 세상의 결핍 가운데로 들어갔고 그 결핍으로 인해서 불균형이 형성되었기 때문입니다. 

내가 풍족하려면 남의 필요로 채워야 하는 것이 죄로 물든 세상입니다. 우리가 풍요를 누린다면 그 풍요가 정당한 것이라고 할지라도 그 풍요가 다른 이에게는 궁핍으로 나타난다는 것을 깊이 인식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지닌 근본적인 문제 죄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결코 평등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이를 위해서 오셨습니다. 그분이 우리를 평등으로 이끄시는 것입니다.

누구나 어릴 적에 한 번쯤은 이런 꿈을 꿉니다. “내가 우선 돈을 많이 벌어서 부자가 된 다음에 이웃을 위해서 그 돈을 멋지게 쓰겠다.” 그러나 미안하지만, 인간의 욕망이 한이 없어서 멋지게 쓸 시간이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빌 게이츠의 감동을 주는 연설을 들은 하버드생들이 과연 어떤 꿈을 꿀까요? 자신의 분야에 성공과 성취를 경험한 빌 게이츠의 외침에 공감하면서 그들이 사회의 첫발을 디디면서 사회의 불균형, 혹은 불평등을 바로 잡고자 곧바로 투신할까요?

다는 아니지만 아마 대부분 사람이 ‘창조적’이란 말보다는 뒤에 나오는 ‘자본주의’를 우선 생각할 것입니다. 그것부터 잡은 뒤에 ‘창조적’이란 말의 의미를 생각할는지도 모릅니다. 

우선 부자가 되고, 가진 자가 되고, 기득권자가 되고 난 다음에 평등을 이야기할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이 가지는 한계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처음부터 나눌 수 있어야 합니다. 참 힘들고 어려운 일이지만 말입니다.

처음부터 나눌 수 있다는 것은 현재의 형편이 어떠하든지 나눌 수 있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이 빌 게이츠가 말한 “여러분이 앞으로 전문적인 성취보다 세상 불평등 해결을 위해 얼마나 잘 봉사했는지를 기준으로 자신을 평가하기 바란다.”라고 할 것입니다. 

세상은 불평등합니다. 평등하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위선이고 거짓일 것입니다. 다양한 문화와 언어, 종족과 자원, 지형적 차별 등등이 지닌 불균형이라는 것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인정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우리에게 평등으로, 균형으로 나가야 할 당위성을 주기 때문입니다. 

평등과 균형을 향한 노력이 인간이 가지고 있는 한계로 인해서 온전히 성취되지 않겠지만 그런데도 평등을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가진 자는 못 가진 자를 위해서 베풀어야 하고 힘 있는 자들은 힘없는 자의 위에서 군림하고 지배하려고 하지 말고 섬기고 함께 존재의 가치를 추구하며 나가야 할 것입니다.

이런 노력이 이루어지는 세상이라면 빌 게이츠가 지적한 불평등은 인간의 삶의 자리에서 극복될 수도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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