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펄펄 끓어오르는 현상을 볼 수 있는 온도는 몇 ℃일까요? 흔히 물은 100℃에 이르지 않으면 결코 끓지 않으며, 증기기관차는 수증기 게이지가 212℃를 가리켜야 움직인다고 한다. 99℃, 211℃에서는 절대로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 고작 차이가 1℃일 뿐이다. 그런데 그 1℃가 없이는 티핑포인트(Tipping point)에 도달할 수 없다.
티핑포인트는 문자 그대로 “갑자기 뒤집히는 점”이란 뜻으로, 엄청난 변화가 때로는 작은 일에서 시작될 수 있고 빠르게 발생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한계점이나 임계점, 혹은 변환점이나 전환점의 의미로 사용된다.
이는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깊은 변화를 경험하는 자들에게 나타나는 공통적인 현상이기도 하다. 그들은 마지막 1%의 정성과 헌신까지도 아낌없이 하나님을 향해 쏟아부었다. 결국, 그들은 증오의 화신이 가득한 세상 가운데서 사랑의 사도가 되었다.
“욕심 없던 사모, 항상 남을 먼저 생각했던 사모였지만 그녀가 욕심을 냈던 것 단 한 가지가 있었다면 그것은 하나님께 사랑받는 것이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께 더 사랑받을 수 있을지 늘 생각하고 소망했던 그녀였기에 그렇게 사랑의 사람으로 평생을 살 수 있었나 봅니다.” 이정말 사모(1929-2003)를 가장 지근거리에서 맞대면하고 살았던 남편 이만신 목사의 아내에 대한 회고 한줌이다.
“하나님께 사랑 받고 싶다.” 참된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갈망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자각하는 사람도, 영혼 깊숙한 곳에서 그 울림을 맛보는 사람도 생각보다 의외로 많지 않은 것 같다.
그런데 이정말 사모는 달랐다. 예수의 ‘예’자도 모르는 복음의 불모지에서 태어났지만, 그녀는 하나님의 택하심으로 고향에서 처음 그리스도인이 되었고, 또 갖은 핍박 속에서도 꿋꿋이 신앙과 학문의 길을 갈 수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영광의 자리인 사모의 위치까지 오르게 되었다. 그녀의 중심어린 고백이다.
참된 사모의 길은 고난의 길이요 십자가의 길이었다. 피눈물의 얼룩짐이 없이는 갈 수 없는 길이었다. 그럼에도 시온의 대로가 있어 주님께 힘을 얻는 자에게는 복된 길이었고, 영광의 길이었다.
그녀는 자신이 걸었던 사모의 길을 회고하며 이렇게 권고하였다. “사모의 길은 ‘사랑의 붕대’가 되는 길이었습니다. 우리 주변에 상처받은 영혼이 얼마나 많습니까? 사모는 그 상처 받은 영혼들을 찾아 씻어주고 싸매 주고 감싸 주는 붕대가 되어야 합니다. 사랑의 붕대로서의 삶을 사는 사랑의 사모, 희생의 사모가 되어야 합니다.”
그녀에게는 ‘사랑의 은사’가 있었다. 하나님의 사랑 받는 것이 유일한 욕심이었던 그녀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였다. 그래서 ‘그 은혜에 어떻게 보답할까?’ 하는 것이 그녀의 주된 관심사였다. 하나님께 받은 사랑을 알기에, 하나님을 위해 그 사랑을 쓰고 싶었다. 그래서 그녀는 상처받은 영혼을 싸매 주고 감싸 주는 붕대가 되고자 했다.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단어는 난무하지만 실제로는 하나님의 사랑을 잃어버린 시대는 아닐까? 그러기에 사랑의 사도를 부르는 그녀의 호소가 광야의 예언자적 외침처럼 들리는 것은 아닐까?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 그리스도인도 당연히 사랑이어야 합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사랑하기보다는 미워하고, 믿어주기보다는 불신하고, 화목하기보다는 불화하고, 위로하기보다는 책망하고, 인정하기보다는 정죄하고, 포용하기보다는 배척하고… 늘 서로 상처를 주고 받곤 합니다. 바로 사랑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 사회에 이 사랑의 회복이 시급합니다. 그것을 누가 이루겠습니까? 바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사랑의 은사’를 받아 그 사랑을 우리 사회 곳곳에 심어야 합니다.”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