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은 법으로 지울 수 없다
최근 국회에서 발의된 ‘모자보건법 일부개정법률안’이 교계와 생명윤리 단체들의 강한 반발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해당 법안은 낙태 허용 한계를 전면 삭제하고, 약물 및 수술을 통한 임신중지에 건강보험을 적용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는 단순한 법률 개정이 아니라, 생명에 대한 국가의 태도와 윤리적 기준을 흔드는 시도라는 점에서 심각한 우려를 낳고 있다.
교회는 전통적으로 생명은 수정 순간부터 존엄성을 지닌 존재라는 신앙적 확신을 견지해 왔다. 이는 종교적 신념을 넘어, 현대 생명과학과 윤리에서도 점점 더 강조되는 사실이다. 태아는 단순한 조직이 아니라, 고유한 유전정보를 지닌 독립된 생명체이며, 심장이 뛰고 고통을 느끼며 자궁 밖 생존이 가능한 시점까지 성장한다. 이 생명을 ‘의료적 시술’이라는 이름 아래 제거하는 것은 윤리의 붕괴이자 도덕적 범죄에 가까운 행위다.
이번 개정안은 헌법재판소가 2019년 낙태죄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이후 5년 만에 발의된 후속 입법이다. 그러나 헌재는 당시에도 태아의 생명권을 국가가 보호할 책임이 있다고 명확히 밝혔다. 헌재는 임신 22주 이내의 낙태에 대해 제한적 허용을 제시했으며, 생명 훼손은 본질적으로 불법이라는 전제를 유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법안은 낙태의 허용 한계를 전면 삭제하고, 모든 방식의 낙태를 공적 의료로 제도화하려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특히 ‘인공임신중절수술’이라는 용어를 ‘인공임신중지’로 바꾸고, 배우자 동의조차 필요 없도록 규정한 점은 생명에 대한 사회적 합의와 윤리적 고민을 무시한 처사다. 이는 태아의 생명권을 법률적으로 부정하는 위험한 발상이며, 헌법 제10조가 명시한 인간의 존엄과 생명권, 그리고 국가의 보호 의무를 정면으로 위배하는 것이다.
교계는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부정하지 않는다. 여성들이 임신과 출산의 부담을 홀로 짊어져야 하는 현실을 누구보다 안타까워 하고 있다. 진정한 자기결정권은 생명을 죽일 자유가 아니라, 생명을 품고 기를 수 있게 하는 구조 속에서 보장되어야 한다. 낙태를 더 쉽게 할 수 있도록 돕는 법이 아니라, 생명을 품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법이 필요하다.
실제로 최근 유튜브에 게시된 ‘36주차 임신중지 브이로그’ 영상은 만삭에 가까운 태아의 낙태 과정을 ‘치유의 여정’이라 포장하였다. 이 영상은 생명의 가치에 대한 고민 보다 여성의 감정만을 부각시켰다. 이런 현실 속에서 낙태를 공적 의료로 제도화하는 법안이 통과된다면, 생명 경시 풍조는 더욱 심화될 것이다.
대한산부인과의사회 역시 이번 개정안이 생명 존중의 헌법 가치와 공공의료의 지속가능성을 심각하게 훼손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의료인의 양심과 직업윤리를 존중하는 방향으로 입법이 이루어져야 하며, 낙태 거부권 역시 명시되어야 한다는 의견은 매우 타당하다.
교회는 침묵하지 않을 것이다. 생명은 하나님께서 주신 가장 큰 선물이며, 그 어떤 이유로도 법으로 지워질 수 없다. 우리는 국회가 이번 개정안을 즉각 철회하고, 생명 보호와 여성의 권리를 균형 있게 고려한 대체 입법을 마련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 생명은 법으로 지울 수 없다. 생명을 지키는 것이야말로 정의이며, 진보이며, 국가의 가장 근본적인 책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