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독일 정부에서 국민들을 대상으로 “세계사에 가장 크게 기여한 독일인은 누구인가?”에 대한 설문조사를 벌였다. 1위에 오른 인물은 괴테도, 베토벤도, 헤겔도, 히틀러도 아니라 마르틴 루터(1483~1546)였다. 올해로 루터가 종교개혁의 포문을 연지 495주년을 맞게 된다.

종교개혁 당시 교회는 성경 진리에서 멀리 떠나, 구원을 돈으로 사고파는 엄청난 범죄를 저지르고 있었다. 당시 세속 정부를 간섭할 만큼 힘이 있었고 조직화된 로마교황청은 성 베드로성당 건축을 위해 막대한 돈이 필요했고 그래서 면죄부를 발행했다. 테첼이라는 수도사가 이 일에 앞장섰다. 그는 “금화가 면죄부 헌금함에 떨어지며 ‘땡그랑’ 소리가 나는 순간, 죽은 자의 영혼이 연옥에서 천국으로 옮겨간다”고 설교했다. 그가 가는 곳마다 면죄부 판매는 성황을 이루었다.

이 때, 로마가톨릭교회 사제이며 성경학자였던 마르틴 루터는 테첼이 비텐베르크에 와서 면죄부 판매를 위한 설교를 하려 할 때, 비텐베르크 성당 문 앞에 95개조항의 반박문을 붙이며, 교황청과 정면으로 맞서게 되었다. 루터의 반박문은 인쇄술 혁명에 힘입어 순식간에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각국 언어로 번역되어 파장이 더욱 커졌다. 논쟁은 1517년부터 5년간 계속되었고 결국 루터는 교황청으로부터 파문을 당했다.

그 후, 많은 사람들이 파문된 루터의 목숨을 노렸다. 루터는 아이제나흐의 바르트부르크 성으로 숨었고, 그곳에서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했다. 성직자, 귀족뿐만 아니라 일반인들도 성경을 읽을 수 있도록 했다. “말씀으로 돌아가자. 근원으로 돌아가자”는 루터의 외침이 결국 구교와 신교의 전쟁을 거친 뒤, 종교개혁의 열매를 맺었다. 그렇게 루터는 세계사를 바꾸어 놓았다.

마르틴 루터의 개혁의 외침은 오늘도 유효하다. 종교개혁의 열매로 태동한 개신교회, 특히 오늘날의 한국교회는 물질주의, 이기주의, 세속주의, 교만으로 얼룩진 모습 속에 또 다른 종교개혁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그 어느 때보다 높다. 금권 선거와 정치 공방, 교회 세습과 정당화, 목회자의 성 추문, 교회 내 이권다툼 등으로 얼룩진 한국의 교회들은 “예수로 돌아가자. 말씀으로 돌아가자. 근원으로 돌아가자”는 500년 전 루터의 외침을 똑바로 들어야 할 것이다.

루터가 어릴 때 겪었던 일화는 오늘 우리에게 콘 의미로 다가온다. 루터의 아버지는 광부였다. 아들이 법률가가 되기를 소원했다. 루터는 방학을 마치고 친구와 함께 학교로 돌아가던 중 벼락을 체험했다. 주위는 캄캄하고 폭우가 쏟아졌고, 함께 가던 그의 친구는 그 자리에서 죽었다. 그는 땅에 엎드려 광부들의 수호성인 성 안나에게 약속했다. “살아난다면 수도자가 되겠습니다.” 목숨을 건진 루터는 아버지의 강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수도자가 됐다. 루터를 수도자의 길로 들어서게 한 ‘벼락 체험’이었다. 벼락 체험의 핵심은 ‘두려움’이다. 목숨을 잃을지도 모른다, 내가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인간을 작아지게 한다. 그리고 하나님을 경외하게 한다. 

종교개혁 495주년을 맞이하며 마음속에 커다란 아픔이 있다. 우리들에게 기본은 살아 있는 것일까? 과연 오직 믿음, 오직 은혜, 오직 성경이라고 외치며, 생명 걸고 싸웠던 신앙의 선배들의 개혁의 정신이 오늘 우리들에게 살아 있는 것일까? 아니 일백여년 전 일제치하에서, 공산당과 싸우면서 성결교회를 세워놓은 선배들의 희생과 헌신 앞에 지금 우리들의 모습은 어떠한가? 기본에 벗어난 것은 아닐까? 상식과 기본을 벗어나고, 법과 원칙을 넘어서 있는 것은 아닌가? 내가 사랑하는 성결교회, 눈물 흘리며 지켜온 성결교회의 난국 앞에서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그 곳에 루터의 벼락 체험이라도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아픈 마음으로 현 상황을 바라보면서, 기본으로 돌아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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