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 산불 피해 목회자 부부 트라우마 회복 워크숍을 마치고
지난 3월 영남 지역을 덮친 대형 산불은 수많은 사람들의 삶과 신앙을 송두리째 흔들어놓았다. 정부와 민간 차원의 긴급한 구조와 생계 지원이 이어졌지만, 정작 '마음의 재난'은 누구의 손도 닿지 못한 채 검은 숯처럼 속에서 타들어가고 있었다. 이 속에서 한국교회봉사단이 주관하고 연세대학교 권수영 교수가 이끄는 트라우마 회복 워크숍은 작지만 절박한 외침이었다. "당신의 마음은 안녕하십니까?“
이틀간 경주에서 진행된 워크숍에는 산불 피해 지역 목회자 부부들과 이를 지원하기 위한 13명의 트라우마 세미나 리더들이 함께했다. 이들은 ”성령과 트라우마“ 심리치유 이론에 기반해 ‘몸-마음-신앙’을 통합하는 과정을 이끌었다. 참여자들은 단순한 내담자가 아니었다. 누군가는 자신을 ‘불사조’라 불렀고, 누군가는 ‘회복’, ‘벌꿀’, ‘진국’, ‘광야’라는 별칭으로 스스로를 다시 정의했다. 이 별칭은 그들의 존재 선언이자, 재난 이후 자신을 새롭게 구성하는 상징적 행위였다.
참여자들의 고백은 한 편의 다큐멘터리였다. '사방에서 불길이 몰려와 앞이 1미터도 안 보였다'는 증언, '불이 붙은 차량이 뒤집혀 사방이 붉은 화염으로 가득 찼다'는 장면 묘사, '바위처럼 움직이지 못했던 자신'의 트라우마 고백, '100년 된 교회보다 사람 생명을 우선했다'는 판단 속에 떠난 대피 행렬. 이 모든 것은 신앙 이전에 인간의 본능과 고통의 서사였다.
특히 '교회를 지키느라 집에 갈 수 없었고, 그 사이에 반려견과 염소가 타죽었다'는 한 목사의 고백은 참여자들을 침묵하게 만들었다. 그의 눈에는 눈물이 없었지만, 듣는 이들의 눈시울은 뜨거워졌다. 이런 고백은 단순한 회상이 아니라, 여전히 타오르고 있는 내면의 불길이었다.
참여자 중 일부는 피해를 직접 입지 않았지만, 피해 교우들을 돌보며 간접 외상에 노출되었다. 그들은 ‘지역교회 임원’이자 ‘중재자’로서 강한 책임감에 짓눌렸고, 어떤 이는 그 과정에서 탈진과 불면, 체중 감소를 겪었다고 고백했다.
집단 리더들 역시 이 워크숍이 처음은 아니었다. 그러나 '목회자와 사모'라는 특수한 대상 앞에서 자신이 가진 이론과 도구가 과연 충분한지 깊은 성찰을 하게 되었다. 눈앞에서 말없이 흘리는 눈물을 보며, 상담자로서보다 한 명의 신앙인으로서 무너지는 순간을 경험하기도 했다. “내 눈물이 괜찮다고 말해주는 그분들의 손길 속에, 오히려 내가 위로받고 있었다”는 고백이 인상 깊었다.
각 회기는 ‘별칭 짓기’, ‘호흡법’, ‘몸의 감각’, ‘심상’, ‘그림’ 등을 통해 트라우마에 접근했다. 특히 ‘리소싱’ 작업을 통해 목회자들은 다시금 자신 안에 있는 생존력과 영적 회복 자원을 확인했다. 한 사모는 '새벽기도 후 혼자 교회 식당에서 커피 마시는 시간'이 자신의 유일한 안식처라 고백했고, 또 다른 이는 '친정어머니와의 전화'가 회복의 시간이라 말했다.
목회자는 흔히 위로를 주는 사람으로 여겨지지만, 이번 워크숍을 통해 우리는 그들도 위로받아야 할 존재임을 확인했다. 목회자이기에 더 말하지 못한 고통, 사모이기에 더 눈치 보며 억눌러온 감정들이 이틀간의 여정 속에서 서서히 풀려나갔다. 그리고 그 과정은 '공감', '몸의 감각', '집단의 힘'을 통해 가능했다.
마지막 4회기를 마친 후 한 목회자는 이렇게 고백했다. “이번 시간은 그저 교육이 아니라 예배였습니다. 제 삶 전체를 돌아보게 했습니다.” 또 다른 사모는 “우리 교회도 이런 치유 프로그램이 꼭 필요합니다”라고 말했다. 이 말은 단순한 요청이 아니라, 교회 공동체의 돌봄 방식에 대한 깊은 통찰이 담긴 제안이었다.
재난이 남긴 것은 잿더미만이 아니다. 그 속에 남겨진 고통의 마음을 외면하지 않을 때, 우리는 진짜 복구와 회복을 말할 수 있다. 재난 이후의 과제는 단지 건물과 제도의 복구가 아니라, 마음의 회복, 말의 회복, 관계의 회복이다. 그리고 그 회복은 단 하나의 진심 어린 질문으로 시작된다. “당신의 마음은 안녕하십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