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6년 6월 2일부터 7월 18일까지 서울과 인천 등 총 5회 열렸던 신유복음전도대집회는 박동희 장로의 신유 사역에 거대한 전환점이 되었다. 수많은 청중이 모여드는 대중집회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리게 된 것이다. 이 집회는 신유의 복음을 증거하는 한국성결교회의 위상을 한껏 드높이는 계기도 되었다. 

서울의 문화체육관과 임마누엘수도원에서, 인천의 마가의 다락방에서 집회가 열렸으며, 황성주 목사와 이병선 목사, 박동희 장로와 우춘자 전도사 부부가 함께 사역했다. 

문화체육관 집회 때에는 매시간 기적이 나타났다. 앞을 보지 못하던 사람들의 눈이 열리고, 귀가 막히고 말을 못하던 사람들이 치료되었다. 걷지 못하던 초등학생이 일어나 뛰어다니는가 하면, 수많은 병자들이 치유되었다. 집회 후에는 고침 받은 환자들이 던져놓고 간 목발들이 바닥에 수없이 널려 있었다.

그뿐 아니라 집회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신자가 된 사람들이 평균 200명을 넘었다. 문화체육관 직원들, 집회를 감시하러 왔던 경찰과 형사들도 회개하고 예수를 믿게 되었다. 

이후 인천으로 옮겨 마가의 다락방에서 연속 집회를 가졌다. 마가의 다락방이 설립된 이후 최대의 인파가 몰렸다. 수많은 기적이 일어났으며, 듣지 못하던 자들의 귀가 열리고, 하반신 마비 환자가 17년 만에 일어나 걸어다니는 역사가 나타났다.

암이 치료된 사람들은 부지기수였다. 집회마다 치유의 기적이 계속 넘쳐나자, 집회 장소를 서울의 임마누엘수도원으로 옮겼다. 그때의 흥분과 감동을 잊을 수가 없다. 뜨겁고 대단한 집회였다.

그해 8월 18일부터 8월 22일까지는 광주 무등산 헬몬수양관에서 여름 산상성회를 가졌다. 3,000명 이상의 사람들이 모였다. 그때 장흥 행원당 한약방 백원술 장로가 암에서 고침을 받았다. 그 외에도 뇌졸중, 청각장애인, 하반신이 마비된 여자 환자 등 수많은 기적이 나타났다.

11월에는 대구지역 신유복음전도집회를 가졌다. 타이어 튜브에 앉아서 집회에 참석했던 중증의 소아마비 처녀가 집회 도중 일어나 걸었고, 사람들에게 업혀왔던 뇌졸중 환자도 자기 발로 걸어나갔다. 12월 초에 열린 남원 산성교회(통합) 집회에서는 요추가 주저앉아 오랫동안 걷지 못하던 홍 장로가 일어나 걸었고, 홍 장로의 청각장애인 아들과 며느리도 고침 받았다. 

그리고 청각장애인 3남매(김미정, 수정, 선녀)도 모두 고침을 받았다. 서울에서 내려왔다가 참석했던 폐암 환자도 치료 받았다. 이때 산성교회 집회에서 귀 먹고 말 못하는 농아 20여 명이 고침을 받았다. 

이때부터 박 장로의 집회에는 농아가 집단적으로 치유되는 역사가 강하게 일어났다. 1988년 3월의 대전성결교회 집회에서는 청각장애인 학생 26명 중 25명이 박 장로의 안수로 들을 수 있게 되었고, 5월의 대구 신은장로교회(통합) 집회에서는 수화로 특별 찬양을 드렸던 대구대학교 농아인학교 학생 33명 전원이 안수로 고침을 받았다.

6월의 공주제일감리교회 집회에서는 하반신을 쓰지 못하던 어떤 권사가 말씀을 듣다가 일어났고, 뇌성마비 어린이가 강단에서 걷고 뛰는 역사가 나타났다. 9월의 논산제일감리 집회에서는 축농증과 비염 환자 9명이 고침을 받았고, 청각장애인 성인 20여 명과 농아인 예배에 참석하는 농아들 대부분의 귀가 열렸다. 그 외에도 많은 병자들이 고침을 받았다. 

박 장로는 말한다. “신유 은사는 사랑의 실천이다. 사랑으로 병이 낫는다.” “저는 기도할 때, 사랑을 많이 달라고 기도한다. 사랑 없이는 그런 사역을 제대로 할 수 없다.” 그래서 박 장로는 환자들을 위해 기도하며 악취가 나도 만져주었다. 지금까지 어떤 환자도 만져주기를 거부한 적이 없다. 에이즈환자라도, 한센병환자라도, 암환자들도 만져주었다. 

저작권자 © 한국성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