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을 자유롭게 하는 신학

                                       (양기성 목사)
                                       (양기성 목사)

신학은 몇몇 의미 있는 학문적 가치들을 가지고 있는데 첫째, 진리 탐구다.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므로 진리를 발견하고, 그 진리로 인간의 성품과 존귀함을 향상시킨다.

그 진리로 일반 학문이 제기하는 인간 존재의 의미, 즉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 하는 질문이나, “자연 만물은 언제, 어떻게 존재하게 되었나, 우주와 역사운행은 어떻게 이루어져 가는가”와 같은 질문에 대답을 하는 학문이다.

일반 학문은 한계성을 넘어서지 못하는 인간들이 하는 것이라 어디서든 의심과 질문들을 완벽하게 해결할 수 없는 운명적 상황에 있는 반면, 신학은 처음부터 그러한 의심과 질문에 대답을 하고 있다. 인간을 알고, 자연과 우주를 아는 일, 역사의 주인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진리)을 알도록 도움을 주는 학문이다.

둘째, 인간이 존재하면서 바르게 살아가도록 하는 방향 제시 및 존재의 의미를 알게 해 준다. 신학은 단순한 지적 축적을 위한 학문이 아니라, 삶을 차원 높은 단계로 이끄는 나침반과 같은 역할을 한다.

토테미즘에 심취해 살아가는 인간과 이성적이며 합리적인 동시에 인간 존재의 가장 숭고한 존엄성을 주신 하나님을 알고, 믿고 사는 인간을 비교해 보면, 신이 인간에게 어떤 존재로 나타나며 인간은 어떤 존재로 살아가야 하는가를 쉽게 알 수 있게 한다.

기본적으로, 인간 행동의 결과는 영에서 시작하므로 영성 개발 및 활동을 중요하게 여겨야 한다. 사회가 갈등, 분열, 분쟁, 또는 전쟁 같은 일이 다반사로 발생하는 것은 이러한 거룩한 영적 기능, 즉 성령의 활동을 무시하기 때문이다. 신학은 이러한 과정과 연관된 내면의 실체를 알게 해 주는 학문이다.

셋째, 신학은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 자유한 존재임을 알게 해 주는 학문이다. 구약성경 출애굽기에서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고 무한히 자유하신 하나님임을 말하고 있는데, 인간은 그런 자유를 누리며 살아가는 존재라는 것을 신학을 통해서 알 수 있게 된다.

물론 인간이 하나님의 자유성을 오용, 남용, 무시하기 때문에 범죄적 삶을 살아가고 있음을 또한 신학을 통해서 알 수 있기도 하지만, 하나님의 사랑의 영역 안에서 무한히 자유한 존재임을 알게 해 주는 학문이 신학이다.

마지막으로, 신학은 죄의 성품을 가진 인간들을 회개시켜 하나님 나라를 향한 구원의 반열로 이끄는 것을 최종 목표로 하고 있다. 이러한 존귀한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신학은 또한 교회를 성장시키는 근본 이론을 제시한다.

교회 설립이나 목회는 신학을 토대로 세워지고 목회가 이루어져야 한다. 개신교회가 사회적 비난의 표적으로 나타나는 것은 신학적 기반에 목회 정신을 두는 것이 아닌, 개인의 기업 경영적 운영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교회가 건강하게 부흥하려면 튼튼한 신학적 토대를 이루어야 한다.

여기서 중요하게 살펴보아야 할 일이 있다. 신학을 일반 다른 학문과 동일시하는 신학자들이 있다는 것이다. 아니, 신학자임에도 오히려 철학이나 과학을 신학보다 우위에 두는 자들이 설치는 세태다.

신학의 보조 학문들을 주(Main) 학문으로 올려놓고 있으니 신학의 학문적 가치가 저하될 수밖에 없다. 신학자로서 스스로 정체성을 깎아 버리는 것이다. 이̀런 행태들이 오늘날 교회와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를 추락시키고 있다. 이렇게 신학의 신성함을 무시하니 교회가 천박한 세속인들에게 휘둘릴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목회자들, 특히 신학자들의 역할이 큰 것임을 각성하지 않으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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