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언어로 설교하기

정재웅 교수(서울신대 설교학)
                                                     정재웅 교수(서울신대 설교학)

쉽고 단순하지만 마음에 오래도록 남는 강력한 설교는 어떻게 할 수 있을까? 그 비결 중 하나는 그림언어로 설교하는 것이다. 

그림언어란 한 마디로 청중의 마음 속에 그림을 그려내는 말이다. 미국의 유명 설교자 워런 위어스비는 맥닐 딕슨을 인용하여 “인간 정신은 토론장이 아니라 차라리 화랑”이라고 강조했다. 즉, 우리의 마음은 각종 개념과 기호들을 논리적으로 정리하여 조립하는 공장 보다는 선과 선이 이어지며 하나의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도화지와 같다는 것이다. 

그림언어와 개념어를 비교해보자. 개념어는 의미 단위의 조합을 통해 머리 속에 개념을 조립하게 한다면, 그림언어는 이미지의 조합을 통해 머리 속에 그림을 그려낸다.

예를 들어, 중생(重生)이라는 개념어는 거듭 중(重)이라는 한자와 날 생(生)이라는 한자가 결합한 단어이다. 이 단어로 설교하기 위해서는 중생을 구성하는 한자어들의 의미를 설명해주어야 한다. 중(重)이라는 한자어를 무게가 아닌 거듭이라는 의미로 해석하기 위해서는 중복과 같이 거듭이라는 의미로 중을 쓰는 경우를 말해주어야 한다. 

혹은 영어로 중생을 의미하는 regeneration이라는 말이 ‘다시’를 의미하는 접두어 “re-”가 ‘생성’, ‘발생’을 의미하는 generate의 명사형인 “generation”이 결합된 단어라는 식으로 설명을 해 주게 된다. 이런 방식의 설명은 기호와 기호가 어떻게 조합되는지를 설명함으로서 말의 의미를 설명하는 방식이다.

이러한 방식은 청중이 각 기호들의 의미를 이해한다는 것을 전제한다. 만약 청중이 단어의 기초적 의미 단위를 구성하는 기호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이런 설명은 유효하지 않다. 즉, 요즘 한글전용교육을 받은 세대에게 한자어의 의미를 설명해도 오히려 더 어려운 말로 다가올 수 있다. 또한 영어를 잘 모르는 노년층에게 영어 단어의 어근과 접두어를 설명하면 역시 어렵게만 다가올 수 있다. 

그림언어는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해 준다. 기호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사람들이라도 말과 이미지를 연결시키는 것은 매우 쉽기 때문이다. 거듭남 혹은 중생이라는 단어가 평소 잘 쓰지 않는 단어라고 하더라도 태어난다는 것의 이미지는 누구나 익숙하다. 양수에 젖어 핏덩이로 태어나는 아기, 조금 시간이 지나면 보게 되는 아기의 보드라운 살결, 천진난만한 눈동자, 어머니의 품에 안겨 전적으로 의존하는 상태 등 새로 태어난다는 것을 떠올리게 하는 이미지들은 우리의 경험을 통해 학습된 것들이다. 

이러한 이미지들은 기호화하기 이전에 모든 인간이 공통적으로 경험한 사건을 머리 속에 그려내 주는 것이기에 이해하기가 더 쉽다. 더하여 이미지는 이전 경험을 불러내는 환기적 효과가 있기 때문에 당시 경험에서 느꼈던 감정도 함께 소환할 수 있다.

중생이라는 기호화된 개념어에서 별 감흥을 느끼지 못하던 사람도 “깊게 패인 주름이 다시 보드라운 아기의 살결처럼 돌아가듯이”라는 그림언어로 표현된 같은 말 속에서 어떤 감정을 느끼게 될 것이다. 

중생을 개념적으로만 설명할 것이 아니라 그림언어로 표현해 보기 위해 갓 태어난 아기의 모습과 갓 세례받은 사람의 모습을 비교해 보자. 이렇게 설교해보면 어떨까? 

우리는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그것을 중생이라고 합니다. 이것이 잘 이해가 안되는 분이라면 세례받고 난 후 여러분의 모습과 갓 태어난 아이의 모습을 떠올려 보십시오. 어머니의 양수에 완전히 젖어 있던 아기가 세상 속으로 태어난 것처럼, 우리는 세례를 통해 하나님의 은혜라는 강물에 완전히 젖어 세상에 다시 태어나는 것입니다. 아기 살결처럼 우리의 마음에는 딱딱하게 굳은 죄라곤 하나없이 보드라운 마음으로 다시 태어납니다. 여러분이 예수 믿고 한 번이라도 그렇게 완전히 하나님의 은혜에 젖은 경험이 있다면, 완전히 죄를 씻음 받은 체험이 있다면 그것이 중생의 체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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