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처방전 철저히 따른 웨슬리
어려서부터 철저한 신앙훈련을 받은 웨슬리는 성인이 된 후 어머니께 훈련의 핵심이 무엇이었는지 여쭈었습니다. 그러자 어머니는 의지를 복종시키는 것이라고 대답했습니다.
모든 악은 잘못된 의지에서 비롯되기에, 부모에게 복종하는 법을 배우지 않으면 이후 하나님께도 복종할 수 없게 된다는 이유였습니다.
웨슬리는 옥스포드 대학 시절에도 신앙 동아리를 만들어 의지를 하나님께 복종시키는 훈련에 힘썼습니다. 주위에서는 참 별나게 신앙생활 한다며 그들에게 “규칙주의자”(Methodists)라는 별명을 붙였는데, 이후 웨슬리는 이 별명을 부흥운동의 이름으로 삼았습니다.
“메소디스트”라는 말은 본래 의사의 처방전을 철저히 따르는 사람을 지칭했습니다. 이를 웨슬리는 죄의 질병에 걸린 우리는 하나님의 처방전을 따라야 한다는 의미로 재해석한 것입니다. 그의 삶과 사역은 하나님의 처방전을 철저히 따르는 것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웨슬리는 목회자 가정에서 자라 영국국교회 목사, 옥스포드 대학교 교수가 되었기에 가정적 배경, 사회적 지위, 지식과 실력에서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모라비아교도들이 그리스도를 믿어 죄 용서와 구원의 확신이 있으며, 성령께서 하나님의 자녀 되었음을 증언(롬 8:16)해 주시는지 묻자, 자신은 구원의 확신이 없고, 성령의 증거가 있다는 말도 듣지 못했으며, 성령을 체험하지 못했음을 인정하고 그들의 신앙의 지도를 받았습니다.
구원을 위해 오직 그리스도만을 의지하는 믿음을 갖고 마음이 뜨거워진 역사적인 올더스게이트 체험은, 자신의 영적 빈곤과 신앙적 무지를 인정하고 더 깊은 진리와 영적 충만으로 나아가라는 하나님의 처방전을 받아들인 결과로서의 소중한 영적 체험과 부흥 사건이었습니다.
웨슬리는 하나님의 처방전을 사역에도 가감 없이 적용했습니다. 옥스포드 대학교의 지적 교만의 분위기에 빠진 교수·성직자·학생들, 유아세례를 받고 교회 명부에 등록되었다는 이유로 구원을 당연시하면서 형식적 신앙에 빠진 영국국교회 신자들, 성도라 해도 죄를 짓지 않을 수는 없다며 성결의 능력을 부인하는 루터란, 칼빈주의자들 모두를 향해, 학문, 교양, 예의, 형식적 경건으로는 구원받을 수 없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거듭나 성령의 내적 확신을 갖고 사랑으로 섬기는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하며, 거룩함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볼 수 없다(히 12:14)고 선포했습니다.
그 결과 옥스퍼드 대학교 교수회는 그를 징계했고, 영국국교회는 그에게 더는 강단설교를 허락하지 않기로 결의했으며, 그를 가톨릭주의 이단으로 비난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신자와 교회와 사회에 하나님의 처방전을 그대로 적용한 웨슬리를 통해 많은 영혼이 울부짖으며 회개해 환희의 구원을 맛보게 하셨고, 그들에게 오순절적 부흥을 허락하셨으며, 복음으로 변화된 개인의 거룩함이 사회 전체를 갱신하는 동력이 되게 하셔서 18세기 산업혁명기 탐욕과 방종과 무질서의 영국 사회를 민주·복지사회로 변화시켜 주셨습니다.
오늘날 교회가 맛을 잃고 사람에게 밟히며 사회를 밝히고 정화할 능력을 상실해 세상이 혼돈 가운데 있는 이때에 하나님의 처방전을 받아 들고 조금도 가감 없이 자신과 교회와 세상에 적용하는 성도와 목회자와 교회는 어디에 있습니까? 웨슬리를 공부할수록 그에게서 도전받는 것은, 하나님의 기준을 조금도 타협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세밀하고도 철저히 모든 분야에서 실현하려 했던 그의 영적 치열함입니다.
웨슬리의 후예들은, 자신과 교회와 국가에 내리신 하나님의 영적 처방전을 철저히 따르는 것이 우리의 영적 DNA임을 기억하며 그렇게 살기를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