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로 떠오르는 독일어

주석현 목사(평택교회)
주석현 목사(평택교회)

유럽 유학생들과 한인 2세들을 위한 수련회 인도 차 독일을 다녀왔습니다. 1998년 11월, 낯선 땅 독일에서 목회를 시작하여 2003년에 귀국한 후로 22년 만에 처음으로 다시 찾은 독일입니다. 

이런 것을 감회가 새롭다고 하는 걸까요? 20년도 더 된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르며 추억이 깃든 곳에 이를 때마다 가슴이 ‘쿵쿵’ 설렜습니다. 예전과 달라진 곳에서는 그 낯선 느낌에 사뭇 긴장도 되었습니다. 

설렘과 긴장을 오가며 하루 이틀 적응하고 나니 이상한 일이 생겼습니다. 귀국한 후 20년도 넘게 한 번도 쓰지 않았던, 그래서 다 잊어버린 줄로 알았던 독일어가 하나둘 생각나기 시작했고, 그 말들이 자연스럽게 튀어나왔습니다. 한국에서 준비해간 선물을 현지에 계신 분께 건네며 “이것은 제가 준비한 게쉥크(Geschenk, 선물)예요!”라고 하거나, 시내 상점을 지나며 “여기는 앙게보트(Angebot, 할인판매)를 하네?”라고도 합니다. 인사는 무척 자연스럽게 독일어로 하게 됩니다.

그동안 20여 년 넘도록 전혀 사용하지 않던, 아니 지금까지는 전혀 생각조차 하지 않던 독일어였는데 그것이 하나둘씩 생각난다는 것이 무척이나 신기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생각난 단어를 조합하여 나의 의사를 독일인에게 전달하며 대화할 수 있다는 것도 점점 재미있는 일이 되었습니다.

며칠 더 지나고 나니 예전에 썼던 독일어 한두 문장씩 자연스럽게 말할 수 있었고, 현지인들과 독일어로 의사소통도 하게 되었습니다. 더듬더듬하는 말이지만 그 정도면 잘하는 것이라고 격려하며 칭찬하는 독일인들의 말에 자신감을 얻습니다. ‘이번에는 어떻게 답을 할까?’, ‘이번에는 어떤 질문을 해볼까?’ 하며 기억 속 단어를 모두 꺼내어 열심히 조합하며 말을 해봅니다.

제가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았던 독일어 단어와 문장들이 생각나고 사용할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두 가지 이유가 아니었을까요? 하나는 환경적 요인 때문이었을 겁니다. 한국에서는 전혀 독일어를 사용할 일이 없었으니 생각도 하지 않았고 사용할 일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독일에서는 들려오는 소리가 당연하게도 거의 다 독일어였기에, 저도 모르게 기억 속의 독일어가 입 밖으로 튀어나왔던 것 같습니다.

또 하나는 25년 전 그때, 독일어를 배우려고 열심히 머릿속에 입력해 둔 것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는지요? 그렇게 잘하지는 않았지만, 그곳에서 목회하기 위해 몸부림치며 배웠던 독일어가 제 머릿속 어딘가에 입력되어 있었을 겁니다. 

그때 열심히 배우고 외웠던 말들이 있었기에 지금 한두 마디라도 할 수 있었던 것이지요. 그만큼 환경이 중요하고, 그만큼 배움이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습니다.

이 경험을 통해 결심한 두 가지. ‘내가 있는 환경에 따라 말이 달라진 것이라면, 가능한 나는 거룩한 곳에 머물기를 노력해야겠다!’, ‘열심히 애를 쓰며 외운 독일어가 필요할 때 저절로 생각났다면, 나의 삶에서 필요할 순간 곧바로 하나님의 말씀이 떠오르도록 오늘도 하나님의 말씀을 내 머릿속에 한 구절 한 구절 잘 담아두어야겠다!’

오랜만에 타본 독일 버스 안, 버스가 코너를 돌 때 몸이 “휙”하고 한쪽으로 쏠리자 그 순간 제 입에서 튀어나온 말은 “웁스(Ups)!” 한국에서 “아이고, 아이고” 혹은 “어이쿠” 소리를 입에 달고 살던 제가 독일에 와 있다고 “웁스!”라고 하다니. ‘이렇게 몇 주만 더 독일에 머물렀다가는 아예 한국말을 잊어버리는 것은 아닐는지?’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시1:1-2)”

저작권자 © 한국성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