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5년 선교사들의 입국 후
성결교회 1932년 50개 설립
새신자 등록 1만5000명이나
올해도 부활절 초심 되새기고
부활의 증거되신 주님 전해야

전통적으로 부활절은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매달리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음을 이기시고 무덤에서 다신 살아나셔서 우리에게 산 소망을 주신 날을 기뻐하는 절기이다.

우리는 지금 부활절을 하루 축하하고 있지만 사실 전통적으로 부활절 절기는 하루가 아니다. 부활절 절기는 부활절인 주일 전날 토요일 일몰 시간부터 시작하여, 성령충만함을 축하하기 위한 절기인 오순절까지 50일 간 절기로 지켰다. 즉 유대교의 유월절부터 오순절까지 기간에서 유래된 것이다. 

복음서는 예수님과 제자들의 ‘최후의 만찬’을 ‘유월절 만찬’으로 표현한다(마 26:17-19). 그리고, 사도 바울은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셨느니라”(고전 5:7)라고 언급한다. 여기서 ‘유월절’, 파스카(Pascha)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희생, 부활과 긴밀한 연결이 되는 구절로 여겨졌다. 

이런 유래 때문에 사도 시대 부활절은 유월절을 기준(니산월 14일, 3-4월)으로 정했으며 325년 1차 니케아 공의회에서 부활절을 추분 이후(첫 보름) 안식일 다음날인 주일로 결정했다(태양력 기준 3월 22일-4월 25일 사이). 처음에는 유월절을 기준으로 부활절을 지켰기 때문에 부활절은 3월과 4월 사이에 지키게 되었고 주일이 아닌 경우도 있었다. 

또한 초대교회는 유월절(Pascha)이라는 명칭을 ‘부활절’의 의미로 한동안 사용했고, 우리가 지금 사용하는 ‘부활절’(Easter)이라는 용어로 한참 후대에 사용하게 되었다. 초대교회 처음 3세기 동안에 부활절(Pascha)에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 십자가에 못박히심, 그리고 부활을 기념하는 날로 여겼다.

초대 교부인 터툴리안은 부활절에 세례를 받는 날로 지정, 세례와 부활의 의미를 연결하려고 노력했다. 부활절에 세례를 받는 것은 그리스도안에서 옛사람은 죽고, 그리스도와 더불어 새 사람으로 사는 것으로 여겨졌다(롬 6:4-5). 3세기 히톨리투스의 <사도전승(Apostolic Tradition)>이라는 글을 보게되면, 부활절에 세례를 받는 사람들은 고난 주간 금, 토일 금식을하고, 토요일 저녁은 철야예배를 드리고, 부활절 아침 닭이 울 무렵 예수님이 부활하신 시간에 세례를 받았다고 강조한다. 

4세기에는 ‘고난주간’을 지키는 특별한 날들 지정이 완성되었다. 즉, 성목요일(Holy Thursday), 성금요일(Good Friday), 부활절 이브(Easter Eve)와 부활주일(Easter Day), 그리고 고난·종려주일이 확립되었다. 부활절은 초대교회 시절부터 모든 연-주기 중에서 핵심적 절기였다. 주일이 한 주간의 중심으로 여기는 것처럼, 부활절은 모든 교회력의 중심 기간이 되었다. 

교회가 주일에 예배를 드린 이유는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날, 즉 ‘큰 부활주일(The Big Easter)’를 매주 기뻐하고 기념하기 위함이었다. 예배학자인 제임스 화이트는 초대교회가 “매주 주일은 작은 부활절을 지켰으며, 그 중 부활절은 일년 중 가장 큰 주일로 여겼다”(James F, White, Introduction to Christian Worship, 57)라고 언급한다. 서로마교회 또한 이런 취지로 주일과 부활주일을 지키기를 원했다. 초대교회의 교부인 유세비우스는 주일을 제외하고 부활절을 기념할 날이 없고 부활절에는 고난주간의 금식을 끝내는 축하의 날로 지켜야 한다고 믿었다.                                              

중세시대 역시 부활절은 기독교 절기 중에 가장 중요한 축제 절기로 지켜 졌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념하는 부활절 당일날 예배 및 식탁 나눔, 노래와 춤 등 많은 행사를 갖았다. 
이 때문에 부활절은 중세교회에서 신앙의 중심 절기가 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축하하는 성일로 여겨졌다. 특히부활절기 모든 예배에서는 모세오경과 예언서, 수난 설화를 낭독했고, 성만찬 집전과 부활절 당일 세례를 시행했다.                                        

가톨릭교회는 성 빅토리오 1세 교황의 선언에 따라 춘분(3월 21일)이 지나고 만월이 되면서 맞이하는 첫 주일을 부활절로 지내고 있다. 부활 전야에는 교회뿐 아니라 전 도시에 등불을 장식했다. 교회는 성 3일과 함께 부활절을 경축한다. 성 3일은 성목요일 주의 만찬으로 시작되고 부활 전야제로 정점을 이르고, 부활주일 저녁기도로 마친다. 

로마카톨릭 교회는 그동안 중지되었던 전야제 미사를 허용하며, 1951년부터 부활 첫 미사를 토요일에서 주일로 넘어가는 밤에 드리는 것을 허가했다. 게다가 1955년 밤 미사를 의무화 했다. 한국교회에게도 부활절은 매우 의미 있는 절기이다. 언더우드와 아펜젤러 선교사가 처음 한국 땅을 밟은 것도 부활절 아침(1885년 4월 5일)이었고, 대부흥이 시작된 절기도 부활절 절기였기 때문이다. 

부활절 아침 한국에 도착 후 감격한 아펜젤러 선교사는 다음과 같은 편지를 선교부에 보냈다. “우리는 부활절 아침에 이곳에 도착했습니다. 이날 사망의 권세를 이기신 주께서 이 백성을 얽어맨 결박을 끊으사 하나님의 자녀로서 빛과 자유를 주시옵소서.”

1903년 여름에 시작된 원산대부흥의 불길은 개성으로 옮겨붙었고 1905년 부활절의 중요성을 인식한 선교사들과 성도들은 그해 설날(음력)부터 말씀사경회를 진행했다. 마침내 그 은혜의 불길이 4월 23일 부활절까지 계속 타오르게 되고 성도들은 진정한 부활하시고 산 소망되시는 예수님의 은혜를 체험하게 된다. 

한국교회는 1947년 교파와 관계없이 부활절 연합예배를 드렸으나, 1960년대 진보, 보수 교단의 분열로 양측이 별도로 부활절 예배를 드렸다. 그러다 1978년 ‘부활절 연합예배’를 다시 드리게 되었으나, 최근 연합기관들의 분열과 정치, 사회 분열로 부활절의 진정한 의미를 잃어버리고 있다.

부활절은 매년 춘분 이후 첫 만월 다음에 오는 주일로 계산된다. 이를 기준으로 부활절 및 사순절의 시작인 재의 수요일을 알 수 있다. 올해 춘분은 3월 20일(목), 춘분 이후 첫 만월 4월 13일(화), 그러므로 첫 만월 다음 주일 4월 20일(주일)이 부활절이다. 

우리는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를 AI시대라 일컷는다. 인공지능(AI)은 4차 산업혁명의 핵심으로 빠르게 발전하면서 우리 삶속에도 깊이 스며들고 있다. AI시대 데이터는 최대의 자본이 되었고, AI는 알고리즘에 따라 그 데이터를 생산, 파악해서 기능을 수행한다. AI는 ‘부활절’과 관련 다양한 이미지와 데이터를 제공할 수 있지만 AI시대에도 변하지 않는 지켜야 할 부활절의 의미와 실천이 있다.

첫째, 초기 한국교회 선교의 초심과 부흥을 회복해야 한다. 앞에 언급했지만 아펜젤러와 언더우드는 십자가의 능력과 부활의 소망을 전하기 위해 ‘은둔의 나라’에 오게 되었고, 1885년 부활절 아침에 제물포항을 통해 조선땅을 밟게 되어 그 기쁨을 선포한다. 그 복음의 씨앗, 부흥의 불길이 팔도강산 방방곡곡에 영향을 미쳤다. 성결교회도 늘 그 부흥의 역사 한 복판에 있었다. 그 부흥을 통해 1932년 한해 50개 교회가 설립되었고, 2000여명이 세례를 받았으며, 1만 5000명의 새신자들이 등록했고, 3000명의 다음세대들이 증가했다. 

둘째, 부활하시고 복음의 모범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자. 이땅에 오셔서 우리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부활의 소망을 기억하는 부활절이 되어야 한다. 교회 역사에서 교회들은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선포하고 그 분과 같은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해 왔다.

셋째, 고난과 부활을 연결하여 현실에 참여하고 희망을 제시해야 한다. 그리스도와 같이 고난을 극복하고, 부활의 소망과 희망을 붙들어야 한다. 부활 소망을 경험한 성도들은 현실이 아무리 암울해도 구속적이며, 창조적 변화를 소망하고 예수님 그리스도안에서 화합과 희망을 제시한다. 

마지막으로, AI 소비문화시대에도 세상 풍조를 따르지 않고 부활의 신앙을 의지해야 한다. 기독교 철학자인 제임스 K. A. 스미스는 그의 책 『습관이 영성이다』에서 “내가 사랑하는 것이 바로 너다”(You Are What You Love)라고 언급한다. AI시대 우리는 말씀을 숙고하기 보다는 소비적인 것을 탐닉할 때가 많다. 적어도 이번 부활절에는 십자가를 깊이 있게 묵상하고 부활의 소망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하고 묵상하는 시간을 보내시길 기대한다.  

저작권자 © 한국성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