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이 좋으면 다 좋다” 천국 소망 키우자
유언장-버킷리스트 작성 등 필요
복음 바탕으로 타인 용서하고 화해
지나온 삶 되돌아보며 두려움 덜기
지난해 목회데이터연구소가 펴낸 『한국 교회 트렌드 2025』에 따르면, 교회 내 만 65세 이상의 고령교인 10명 중 8명은 ‘죽음에 대한 강의나 교육이 있다면 배우고 싶다’고 응답했다.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죽음을 미리 준비하길 원하는 고령 교인들이 많은 것이다.
그러나 막상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모르고 교회에서도 이에 대한 교육이나 프로그램이 준비되지 않은 경우도 많다. 하지만 고령교인은 물론이고 건강하고 젊은 사람들에게도 죽음에 대한 준비는 필요하다. 죽음은 예고 없이 어느 날 찾아오기 때문이다.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기뻐하는 부활절을 맞아 준비된 죽음과 부활에 대한 소망을 다시 생각해보자.
아름다운 마무리 웰다잉(Well-dying)
최근 몇 년 새 한국 사회에서 웰다잉(Well-dying)이라는 단어가 유행하고 있다. 웰다잉의 사전적 의미는 ‘삶의 마지막을 존엄하고 평화롭게 준비하는 과정’을 뜻한다. 죽음을 두려움이 아닌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인식의 전환에서 시작된 문화이다. 올해 65세 이상의 인구가 20%를 돌파할 것으로 예상되는 등 초고령사회로 진입하며 자연스럽게 죽음에 대한 관심과 인식의 변화가 생긴 것이다. 죽음을 터부시하던 과거와는 다르게 죽음을 미리 준비하고 예비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최근에는 웰다잉에 대한 교육이 과거보다 다채로워졌다. 예전에는 죽음교육이라는 주제로 장례의례와 유족 상담 등에 그쳤다면 최근에는 심리적 준비, 법적 준비, 생활 정리, 관계 정리 등 다양하게 진행된다. 여기에 실천방법으로 사전연명의료의향서와 버킷리스트 작성, 유언장과 인생회고록 쓰기, 생활 단순화 등 본인이 직접 실천할 수 있는 실천방법도 눈에 띈다.
최소 10년에서 20년 후 다가올 죽음을 미리 준비하고 혹시라도 생길 가족간의 분쟁을 예방하는 차원이다. 무엇보다 스스로의 삶을 돌아보고 하나씩 준비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많은 관심을 모은다.
기독교인의 죽음 준비는?
그렇다면 기독교인에게 필요한 웰다잉 준비는 무엇일까? 대부분의 기독교인은 죽음 이후 부활을 소망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이런 믿음이 간혹 준비되지 않은 죽음을 맞게하는 원인이 되고는 한다. 내세에 대한 소망으로 현실을 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다.
서울신대에서 웰다잉 과목을 가르치는 오혜련 교수(각당복지재단 대표)는 이런 부활에 대한 소망과 천국에 대한 믿음 때문에 더욱 준비된 죽음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오 교수는 “웰다잉은 기본적으로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지금부터 미래의 죽음을 대비하는 성찰과 준비 과정을 거쳐 죽음을 맞는 순서를 갖는다”며 “기독교인이라면 여기에 신앙적으로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죽기 전까지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는 일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또 그는 “본인은 평생 그리스도인으로서 남들에게 존경을 받고 살았는데 사망 이후 유족들이 유산이나 다른 문제들 때문에 갈등을 겪는 경우도 보게 된다”며 “본인의 사망 후에도 남겨진 가족들이 신앙을 지키고 화목하게 살 수 있도록 준비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부연했다.
교회의 프로그램 달라야
이렇게 기독교인의 죽음 준비가 특별한 것처럼 교회에서의 웰다잉 프로그램도 달라야 한다. 일반 웰다잉 프로그램이 인생 그래프와 버킷리스트, 유언장과 연명의료의향서 등으로 이뤄지는데 반해 교회에서의 프로그램에는 복음 제시와 구원에 대한 확신, 용서와 치유가 포함되는 것이다.
실제로 오는 5월부터 웰다잉 프로그램을 적용하는 태안 안흥교회(김상수 목사)는 10주간의 프로그램 중 절반이 기독교 신앙과 관련이 있다. ‘죽음이란 무엇인가’라는 강의로 성경적인 죽음의 의미를 제시한 후 ‘웰다잉과 복음’이라는 강연에서 참된 웰다잉의 출발은 복음임을 이해시키는 것이다. 이 시간에는 복음을 제시하고 구원의 확신을 누리며 남은 인생을 살아가게 하는 것이 핵심이다. 버킷리스트를 작성하는 것은 일반 프로그램과 같지만 여기에 신앙적인 부분도 포함시켜 남은 생애를 신앙 중심으로 살도록 인도하는 것도 눈에 띈다.
프로그램 중간에는 용서와 치유의 시간을 통해 자신이 용서해야 할 사람과 용서받아야 할 사람을 적게 하고 가장 큰 용서는 하나님의 용서임을 깨닫게 하는 강의도 들어있다.
강사로는 김상수 목사를 비롯해 전도학 박사와 심리교육 전문가, 웰다잉 전문 강사, 의사 등 각 분야별 전문가들을 초빙했다. 김상수 목사는 “서울신대 신학전문대학원 과정에서 웰다잉을 공부하고 교회 상황에 맞게 프로그램을 접목하게 됐다”며 “10주간 매주일 밤 예배시간을 통해 진행할 예정이며 주요 목적은 교인들에게 기독교적인 웰다잉이 무엇인지를 알리고 남은 여생을 신앙 안에서 보내게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웰다잉 교육, 인식변화가 먼저
이렇게 웰다잉 교육이 교회에서 적용되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인식의 변화가 필요하다. 죽음이라는 단어 자체가 부정적이고, 죽음을 교육한다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들기 쉽기 때문이다.
오혜련 교수는 “누구에게나 죽음은 피하고 싶은 단어이고 이에 대한 준비가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하면서도 쉽게 참여하기 힘든 일이 바로 죽음에 대한 교육”이라며 “가장 먼저 목회자들이 웰다잉 교육의 필요성을 느껴야 하고 남은 인생을 하나님 안에서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일이라는 점을 교인들에게 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어 그는 “웰다잉이라는 단어를 처음 들었을 때는 거부감을 갖지만 오히려 노년의 성도일수록 취지를 잘 설명하면 쉽게 수긍하고 오히려 적극적으로 교육에 동참하는 경우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또 오 교수는 초고령화시대를 맞은 한국교회를 위해서는 웰다잉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부연했다. 그는 “이미 각 교회마다 고령 성도들이 젊은 세대보다 더 많은 현실 속에서 앞으로 후손들에게 어떤 신앙을 유산으로 남길 것인지가 한국교회의 과제가 될 것”이라며 “비기독교인들도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물질 등의 유산을 남기는데 기독교인이야말로 용서와 화해로 하나가 되고 신앙의 유산을 전해야 하지 않겠는가”라고 강조했다.
한편 우리 교단에서는 현재 서울신대 신학전문대학원에서 웰다잉 과정을 운영 중이며 개 교회에서는 진주교회(이명관 목사)와 신성교회(신윤진 목사)가 가을부터 웰다잉 교육을 교회 프로그램에 접목할 계획으로 알려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