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여인이 질병과 가난 속에서 심신이 썩어 들어갔다. 입술에서는 부패한 시신의 악취처럼 원망과 불평, 탓과 비난 같은 저주의 말이 쉴 새 없이 쏟아졌다.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자랐고, 중고등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던 재원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비참하고 참담한 모습이었다.
결국 그녀는 혹독한 시련을 견디고 견디다 못해 자살의 길로 들어섰다. 그때 60여세 된 한 친척 권사가 찾아왔다. “훈이네, 훈이네, 예수 믿어라. 에스더 같은 사람이 되어라.” 하나님이 그 가정을 살려내기 위해 보내신 사자였다. 하지만 그녀가 완강히 거부했다.
어릴 적 그녀는 동네 교회에 다닌 적이 있다. 지역 유지였던 그녀의 부친도 청년 시절에 교회를 설립하고 청년 집사로 충성했다. 그런데 탐욕에 화인 맞은 목회자를 만나면서 안타깝게도 신앙을 잃어버렸고, 우상숭배의 여인을 아내로 맞으면서 거짓된 세상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이후 그 집안에는 예수를 믿는 사람이 거의 사라져버렸고, 한 두 자녀가 교회를 다니며 근근히 믿음의 불씨를 간직했다. 그런데 이것마저도 학업 관계로 고향을 떠나면서 물밑 속으로 가라앉고 말았다.
초등학교 동기동창과 연애 결혼한 그녀는 교수 남편과 함께 멋지고 행복한 인생을 살고 있었다. 그런데 남편이 교수직을 사직하고 시작한 사업이 갑자기 망하게 되면서, 혹독한 시련이 찾아왔다. 설상가상 교편생활을 하던 그녀의 몸도 망가지기 시작했다. 신장이 나빠졌고, 위암 증세가 나타나며 심하게 구토를 했다.
얼마 살지 못할 거라는 생각에 사표를 내고 서울로 올라와 전세방과 월세방을 전전했다. 실의에 빠진 남편은 술값으로 돈을 탕진하여 거지가 되었고, 3세 된 막내딸마저 교통사고로 잃게 되었다.
남편을 잘못 만나 생긴 일인 것 같아 모든 불행을 남편 탓으로 돌렸다. 하루는 미국에서 살던 친구가 그녀의 애처로운 모습을 보더니 와서 채근했다. “마포대교 아래 유명한 관상쟁이가 있는데 관상을 보러 가자.” 그녀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따라나섰고 관상쟁이에게 생일과 생시를 적어 주었다. 그러자 관상쟁이가 말했다. “당신, 옛날에 종교를 가진 적 있지? 당신 예수 안 믿으면 죽을 수밖에 없어.”
그녀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지난 날들을 생각해 보았다. “대학교수면 최고인데, 뭣 때문에 그 자리를 버리고 정치한다고 했다가 이 지경이 되었나?” “또 지옥이 이 세상보다 더 괴롭다면 죽은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날 친척 권사가 다시 찾아왔다. 1974년 겨울. 지독히도 추웠다. 권사가 ‘예수 믿으라’고 사정하기에 ‘그러겠다’고 약속했다. 다음날 아침 일찍, 그녀는 북아현동 산꼭대기에 있는 어떤 장로교회로 갔다. 예배 중 <내 주의 보혈은 정하고 정하다>라는 찬송을 부르는데 눈물이 그치질 않았다. 몸이 한결 가벼워지고 힘이 좀 생기는 것 같았다.
그녀에게 생긴 변화를 감지하고, 그 권사가 그녀에게 3일만 금식해 보라고 권했다. “훈이네야, 금식을 한번 해봐라. 3일만 금식을 하면 에스더와 같이 억울한 일들이 해결될 것이다.” 심한 위장병으로 먹지도 못하던 시절이라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다’라는 심정으로 금식을 했다. 금식하는 데 어릴 적에 불렀던 <천부여 의지 없어서> <멀리 멀리 갔더니> 같은 찬송이 기억나 부르는데, 하나님의 은혜가 쏟아졌다. 눈물의 샘이 터졌는지, 그 많은 눈물을 흘리고 흘려도 끝이 없이 쏟아졌다. 오만가지 죄가 깨달아졌고, 마음속 깊은 곳에 묻혀 있던 죄까지 기억나는 대로 다 털어놓았다.
금식 3일째 되던 날 오후 3시쯤 들어보지도 못했던 방언의 은사가 임했고, 어지럽던 머리가 맑아지고 전신에서 새로운 힘이 쏟아났다. 병을 고쳐달라는 기도는 엄두도 내지 못했는데 그 많은 병도 씻은 듯이 사라지고 없었다. 아내의 변화된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는 눈이 있었다. 바로 박동희 장로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