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신대, 복음전래 160돌 포럼
“식민주의 옹호 등 평가 잘못돼”
1866년 평양 대동강가에서 복음을 품고 순교한 토마스 선교사의 헌신이 159년이 흐른 오늘날, 한국교회 선교정신의 뿌리로 재조명되고 있다.
토마스 선교사 복음 전래 160주년을 앞두고, 그의 삶과 죽음을 단순한 역사적 사건이 아닌 신학적 유산으로 성찰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총신대학교 선교대학원과 예장합동 기념사업특별위원회는 지난 4월 14일 총신대 주기철 기념홀에서 ‘토마스 선교사와 한국교회’를 주제로 기념포럼을 열었다.
이날 이영식 교수(총신대)는 1885년 작성된 엘리엇 그리피스의 글에서, 토마스 선교사를 ‘승객, 선교사, 성서공회 대리인’ 등으로 지칭했다는 사실을 언급하며 “그를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이들이 토마스 선교사를 마치 셔먼호의 대장처럼 서술한 것과는 다르게 배의 소유주와 선장은 따로 있었다”고 지적했다.
『토마스 목사전』의 저자이자 이집트 선교사로 사역해온 유해석 박사(총신대 선교대학원 주임)도 토마스 선교사의 생애를 통해 그의 신학적 유산을 조명했다.
유 박사는 “초기 한국교회는 토마스의 죽음을 순교로 중요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사무엘 마펫은 성공적인 한국 선교역사를 회고하면서 한국 기독교는 1865년 조선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 입국했던 토마스 선교사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평가했다”고 말했다.
실제 1912년 9월 토마스 선교사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사무엘 마펫 선교사를 중심으로 토마스기념위원회가 구성됐고, 1926년 9월 11일 열린 제15회 한국장로교총회는 토마스 선교사 순교 60주년 기념식을 그가 순교했던 평양에서 개최했다. 1927년에는 토마스기념재단이 설립됐고, 같은 해 영국해외성서공회 한국지부 설립 30주년을 기념해 영국해외성서공회와 승동교회 공동주관으로 토마스 선교사 60주기 기념예배가 진행됐다.
유 박사는 “토마스 선교사가 1856년부터 1866년까지 런던선교회에 쓴 21통의 편지와 기록들을 분석했지만, 식민주의를 옹호한 것 같지 않다”며 “그가 조선에 온 이유는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선교적 신념 때문이었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