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45년 4월 8일 일요일, 본회퍼 목사는 간소한 예배를 인도했고, 우리 모두의 심금을 울리는 말씀을 해주었다. 그가 마지막 기도를 마치자 평복 차림의 두 사람이 문을 열고 들어와서 불렀다. ‘죄수 본회퍼, 따라오라.’ 그것은 죄수들에게는 한 가지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곧 교수대였다.” ( 신도의 공동생활』)

▨… 본회퍼의 전기로 우리의 부끄러움을 깨우쳐준 에버하르트 베트게는 본회퍼의 최후를 조금이라도 더 정확하게 그려내기 위해서일까, 두 사람의 증언을 우리에게 들려주었다. 본회퍼 생애의 마지막 한 주를 함께 지낸 페인 베스트에게 생애의 마지막 한마디를 남겼다. “이로써 끝입니다. 그러나 나에게는 삶의 시작입니다.” 죽음이 삶의 시작이라는 이 신앙의 역설을 비신앙인들은 죽음에 이를 때까지 체험하지 못하는 것 아닐까. 아니, 신앙을 가지고도 이 역설을 제대로 체험하거나 이해하는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

▨… 본회퍼 목사가 플로센뷔르크에서 교수형 당하던 새벽, 반쯤 열린 창문을 통해 그 모습을 지켜본 의사가 있었다. 10년 뒤 그는 다음의 기록을 남겼다. “나는 그가 죄수복을 벗기 전 바닥에 무릎을 꿇고 자신의 주 하나님께 진심으로 기도하는 모습을 보았다. 나는 이 사람의 기도가 어찌나 경건한지 하나님이 그의 기도를 들어주셨다고 확신할 정도였다. 나는 지난 50년 동안 의사로 일하면서 그토록 경건하게 죽음을 맞이한 사람을 본 적이 없다.” (베트게, 『디트리히 본회퍼』)

▨…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죽음을 깨뜨려버림을 플로센뷔르크의 의사처럼 밝히는 성결인 신학자 이신건도 증언한다. “인류는 여전히 죽음의 세상에서 살고 있지만, 이미 죽음을 넘어서고 있습니다. 인류는 여전히 죄로 물든 세상에 살고 있지만, 이미 죄를 넘어서고 있습니다. 밤이 아직 지나가지 않았지만, 새날은 이미 밝아오고 있습니다.” (『디트리히 본회퍼 묵상. 52』)

▨…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계시로서의 말씀”이라는 K. 바르트의 이해가 대세를 이루는 이 땅의 신학풍토에서 본회퍼는 줄기차게 묻는다. 오늘의 시대에 그리스도교는 무엇이며 우리를 위한 진정한 그리스도는 누구인가(1944년에 베트게에게 보낸 편지)를. 이 질문 앞에서 성결인 목회자들은 조금 더 겸손해져야 하지 않을까. 겸손의 첫 발이 자기를 낮추는 것임을 모르지 않는다면….

저작권자 © 한국성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