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 뒤에서 누군가 “목사님!”하고 부르는 소리에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려 돌아보았다. 그런데 그분이 부른 사람은 내가 아니라 나를 안내하는 그 교회의 부목사님을 부르는 것이었다. 은퇴 몇 달 후 어떤 교회에 강사로 초청을 받으신 목사님 한 분이 들려준 말씀이다. 이 일을 겪으면서 그분은 목사님이란 호칭이 자신의 고유명사인 줄 생각하며 일생 살았는데 그제야 이 호칭이 일반적인 보통명사인 줄을 인식했다고 하였다.
▨… 비단 목사의 호칭뿐이랴. 교회 안에서 담임, 당회장, 무슨 무슨 부장, 위원장, 이사장, 총회장, 장로, 선임, 연합단체의 회장, 대표, 지역사회에서 무슨 협의회장, 박사, 교수, 심지어 과거의 직책에 전(前)이 아닌 현직 느낌의 오해를 유도하는 의도를 의심케 하는 증경(曾經)이란 호칭까지... 남이 불러주고 규정하는 보통명사를 고유명사로 착각하며 산다면 임기 종료 또는 정년퇴직 이후에 그 호칭이 얼마나 큰 의미가 있을까.
▨… 모세는 바로의 딸 곧 공주의 아들로 왕좌를 이어받을 가능성도 충분하였으리라. 그러나 남들이 불러주는 ‘공주의 아들’이라는 호칭을 ‘아니’(arneomai 거절. 부인. 반박)라고 부정하였다(히11:24). 자신이 공주의 아들인 사실보다 하나님의 언약과 사명을 간직한 거룩한 민족이라는 정체성의 진실이 더 자랑스러웠기에 남들이 부러워할 호칭을 단호하게 거절한 것 아닐까.
▨… 모세는 익숙한 것들과 결별하고 사명의 길을 걸어감으로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하는 고난을 즐거이 선택하였다. 애굽의 엄청난 보화를 소유하고 마음껏 쓸 수 있는 특권보다 하나님께서 주실 상이 더 크다는 소망을 바라보았다. 오늘날 교회의 사역에서 받는 직분과 호칭은 명예인가, 사명인가. 또 사회에서 남들이 불러주는 이름과 계급이 그렇게도 연연해야 할 만큼 자랑스럽고 가치 있는 것일까.
▨… 첨예하게 대립한 오늘의 현실에서 우리가 거절할 거짓 자아와 선택의 기준이 될 정체성은 어떤 것일까. <한국성결신문>은 평신도 단체의 것인가? 아니다, 성결교회의 것이다. 성결교회의 신학은 진보적인가? 아니다, 성경적이다. 보수적인가? 아니다, 성결하다. 복음적인가? 그렇다, 그리고 선교적이다. 한국교회는 우익이어야 하는가? 아니다, 막힌 담을 허는 평화여야 한다. 좌익이어야 하는가? 아니다, 갈라진 둘 사이를 사랑으로 잇는 소통의 가교여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