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탄을 맞기 위한 대림절을 기다림이라 표현한다면, 부활에 참여하기 위한 사순절은 떠남이라 할 수 있다. 재의 수요일(3.5)로 시작하는 순종의 길을 걸어 고난 주간(4.14~19)의 실천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부활(4.20)에 참여하는 기회다. 오늘의 그리스도인들은 교회력을 따라 살아온 자신의 신앙 만큼 반복되는 절기를 경험하였을 터. 그러나 그날과 계절의 의미를 깨닫고 그 세월만큼 자신의 신앙적 성숙과 삶의 변화를 이루어냈을까.

▨… 메소포타미아의 문명 세계로부터 초원 지대를 거쳐 이집트에 이르는 ‘비옥한 초승달’ 지역은 먹을 것 때문에, 경제적인 이익, 영토 확장, 새로운 문물과 지식을 얻으려 수 없이 많은 사람이 수없는 세월을 끝없이 이동하였다. 아브라함도 그 중의 한 사람이며 그의 부족도 남들과 다를 바 없는 나그네였지만 그 동기와 목적은 전혀 달랐다. 아브라함은 생존을 위한 소망이 아니라 부르심(召命)에 의한 사명(使命)으로 길을 떠났다. 

▨… 하나님께선 아브라함에게 “가라!”하고 말씀하셨다. 수많은 이주민 가운데 오직 아브라함만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라 떠났고,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걸었으며,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살았다. 사순절의 길을 걷는 그리스도인들이 얼마나 그분의 부르심에 응답하고 있으며, 복음 전도와 사랑 실천의 사명을 위임받은 오늘의 교회는 “우리가 부름 받은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과연 말할 수 있을까. 

▨… 빅데이터, 인공지능, 사물 인터넷, 무인 운송 수단 등으로 설명되는 제4차 산업혁명 시대의 종교는 교리 체계나 교세 확장을 넘어 깨달음과 치유의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대형 참사와 코로나 팬데믹, 기후 위기와 재난, 전쟁, 극심한 이념 갈등으로 고통의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교회는 예수의 이름으로 치유와 회복을 경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 몰트만(1926~2024)은 그의 마지막 저서에서 시간의 매 순간은 미래의 시작이다. 우리는 죽는 순간에 부활할 것이다. 그리스도교적 관점에서 조상을 소중히 여기는 것은 시조(始祖)들을 돌아보는 회상이 아니라 앞을 향한 희망, 죽은 자들의 부활과 미래의 희망 안에서 우리의 조상들과 만나게 되는 것이라고 하였다(「나는 영생을 믿는다」). 썩어야만 생명이 될 수 있다. 죽어야만 산다. 버려야만 얻는다. 부활의 생명이 치유와 생명이 되기 위해 지금, 여기, 내가, 죽어야 한다는 진리가 사순절의 역설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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