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알지도 못하면서 남을 함부로 판단
하나님에 대한 오판도 얼마나 많은지
교회 가는 길. 집에서 나와 엘리베이터를 탑니다. 먼저 타고 있던 한 청년이 “콜록콜록” 몇 번이나 기침을 하며 전화를 받고 있습니다. “나 검사받으러 가야 해. 상태가 좀 안 좋네.”
그 짧은 말에 갑자기 긴장됩니다.
‘어? 검사를 받아야 한다고? 기침을 하는 것 보니 코로나인가? 아니면 독감?’
그 청년은 마스크도 쓰지 않은 채 계속 통화를 합니다.
“몰라! 며칠 전부터 그랬어. 별 이상이 없어야 하는데. 요즘 바쁘단 말이야.”
저도 모르게 슬그머니 고개를 앞으로 푹 숙여 외투 속으로 얼굴을 최대한 집어넣고 입을 막아봅니다.
‘바쁜 거로 따지면 내가 더 바쁠 텐데? 당신 때문에 나까지 감염될 수는 없다고!’
7층에서 내려오는 그 짧은 시간 동안 얼마나 긴장이 되었는지요? 바쁜 일은 산더미같이 쌓여 있는데 행여나 코로나 혹은 독감에 전염되어 차질을 빚게 될까 봐요. 저는 1층에 도착해서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마자 뒤도 안 돌아보고 “후다닥!” 잽싸게 내려버렸습니다.
몇 걸음을 채 옮기지 않았을 때, 통화 내용이 조금 더 들려옵니다.
“암튼, 엔진 검사해볼 건데, 그냥 엔진오일만 갈면 된다고 그러면 좋겠어. 바빠죽겠는데 차까지 속을 썩이네!”
뒤이은 통화 내용에 “휴!”하고 안도의 한숨이 나왔습니다. 자기 몸에 이상이 생겨 병원에 가서 검사받겠다는 것이 아니라, 타고 다니던 자동차에 문제가 생겨서 카센터에서 차량 검사를 받겠다는 대화였던 겁니다.
7층에서부터 1층까지의 그 짧은 순간, 짧은 대화 내용을 들으면서 저 혼자 오해를 하고 있었습니다.
한국말은 끝까지 들어봐야 한다고들 하지만, 본의 아닌 오해로 안 해도 될 긴장과 걱정을 했습니다. 심지어 그 청년을 원망하기까지.
그런데 이런 일은 오늘 엘리베이터에서만이 아닌 것 같습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누군가를 오해하며 판단했던 일, 그 오해로 쓸데없는 걱정을 하고 심지어 그 오해로 멀어진 관계들도 새록새록 생각났습니다.
사람들에게 뿐만이 아니라 하나님께 대한 오해는 또 얼마나 많았던지요? 하나님께서 우리의 눈을 뜨게 하시고 귀를 열게 하셔서 필요 없는 오해로부터 자유롭게 해주시길 기도합니다.
“내 아들아, 네가 내 말을 듣고 내 명령을 소중히 여기며 지혜로운 말에 귀를 기울이고 그것을 이해하려고 노력하여라” (잠2:1-2, 현대인의 성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