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교회는 서구를 중심으로 오랜 역사를 거쳐 오면서 늘 시대와 환경을 따라 복음의 효율적 선포를 강조해 왔다. 다시 말하면, 시대에 따라 필요한 신앙적 가치가 나타나게 되었다는 것을 말한다. 18세기 영국에서 존 웨슬리의 성령신학 성결운동으로부터 시작되어 19세기 미국의 성령운동과 성결운동(디엘 무디, 마틴 냅)을 통해서 20세기에 사중복음을 선포하는 성결교회가 탄생하였다. 

사중복음 중 첫째인 ‘중생’은 신학자들의 기본 신학적 관점이었다. 칼빈의 시대에서는 죄로부터의 벗어남, 즉 중생을 강조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거듭남을 통해 새로운 존재가 되기 위한 조건으로 중생에 신학적 강조점을 두었다. 그리고, 거듭남의 일환으로 금욕주의의 실행을 주장했다. 이는 19세기 말, 장로교 신학자였던 심프슨(A. B. Simpson)에 영향을 주었고, 그에 의해 중생신학이 웨슬리신학과도 연관성을 가져 웨슬리신학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복음주의 신학에서도 중생이라는 신학적 표현을 쓰게 되었다. 그래서 웨슬리는 중생의 과정을 거쳐 의에 이르고, 의를 거쳐 성결과, 성화(Sanctification), 그리고 영화(Glorification)에 이른다는 신학적 단계를 정립했다.

둘째로 감리교를 시작한 웨슬리는 중생과 더불어 경건주의 입장에서 ‘기독교인의 완전’을 신학적 모토로 삼았다. 그의 경건주의는 거룩함과 정결의 결정체인 성결론과 맥을 같이 한다. 사회적 병폐를 없애고 복음에 입각한 신앙인의 사회를 만들고자 웨슬리는 스스로 발 벗고 나서서 거듭남과, 성결한 삶을 살 것을 설교로 호소했다. 

셋째로 웨슬리 신학은 ‘신유 신학’과도 연관되어 있다. 흔히, 육체의 질병의 완쾌만을 치유로 생각하는 경향이 많은데, 신유는 영적인 변화, 즉 죄에서 회개를 통해 새로운 존재가 되는 것을 포함하기도 한다. 가난으로부터 벗어나거나, 걱정 근심으로부터 벗어 나는 일, 지독한 증오심 같은 정신적 고통으로부터, 그 외 영적 죄로부터 자유케 되는 역사들 모두 신유에 해당한다. 몸의 질병의 치유도 부패한 마음으로부터 벗어나 정결케 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넷째로 ‘재림’이 웨슬리 신학과 관련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스도의 재림이나 그의 다시 오심은 다양한 해석학적 뜻을 갖는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심판 날 다시 오실 것이라는 내용이 정통 기독교에서 이해하고 있는 재림이다. 웨슬리 역시, 하나님이 역사를 심판하시기 위해 다시 오실 것에 대한 설교를 한 것에서 그의 재림 사상을 엿볼 수 있다. 성령의 임재가 예수 그리스도 재림의 예표적 증거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서 이는 예수 그리스도가 다시 오시리라 한 말씀을 믿는 신앙적 기대감을 설교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웨슬리에게 있어서 사중복음은 어떤 역할을 어떻게 하고 있는 것인가를 이해하는 것이다. 웨슬리 신학에서 중생, 성결, 신유, 재림의 내용이 발견된다. 이는 그의 설교나 신학에서 볼 수 있다. 특히 웨슬리 신학의 장점은 이러한 내용들이 현장에 생동감 있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20세기 들어 한국에도 중생, 성결, 신유, 재림이 소개되어 성결교회에서는 이를 ‘전도표제’로 채택하였다. 이 전도표제로, 마치 웨슬리의 설교로 복음운동이 활발하게 이루어진 것처럼, 한국성결교회 역시 부흥하고 성장하게 되었다.

오늘날 웨슬리 신학이 세계화가 되었는데, 웨슬리 성결운동의 흐름 속에 등장한 사중복음은 한국 내에서도 그 진가를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성결교단은 사중복음의 가치를 자랑스레 말한다. 즉 거듭남, 성결, 거룩한 신적 치유, 예수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에 대한 기대, 정말 이 세대에 가장 필요한 구원론적인 가치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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