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까치가 먼저 와서 소식 알리어 /사람이 사람다울 한 해 열리네 /야만과 비인간 이리 극성이어도 /하늘 아버지의 뜻 힘차니 /주님, 올해 을사년은 을사늑약으로 참담했던 /120년 전 을사년과 사뭇 다르게 을씨년스러운 마음 훌훌 털고 /푸르고 푸른 날들 청청하여, 법치의 민주주의 올곧고 힘차서 /주술 미신의 우상 곤두박질하고 /신앙의 아름다움 풍요롭게 하소서(그리스도 안에서 까치설에, 지형은 올림)

▨… 한국성결신문의 발전이 우리교단  발전의 모티프가 될 것으로 확신하는 경영진은 ‘편집위원회’를 개편하면서 편집위 전원이 참여하는 단톡방을 열었다. 편집위원회이니 신문을 위한 거침없는 비판이 루터의 95개조의 선언문처럼 단톡방을 채울 것으로 기대하지 않았을까. 경영진은 道吾惡者(도오악자)는 是吾師(시오사) ‘나의 나쁜 점을 말해주는 사람은 나의 스승’이라는 가르침을 알았기에 단톡방 개설에 과감할 수 있었을 것이다.

▨… 그러나 단톡방 설치의 기대는 첫 걸음에서부터 어긋났다. 남 듣기 싫은 말하려는, 그것도 신문을 향해 쓴 소리하는 것으로 자기 십자가를 삼으려는 사람은 아무리 성결교회라고 하더라도 찾기가 쉽지 않아 보였다. 그러나 성결교회는 역시 성결교회다. 불가능할 것이라는 예측을 깨뜨리는 신호탄이 드디어 떠올랐다.

▨… ‘수고하셨습니다’와 그 비슷한 인사치레만 그득했던 단톡방이 이런 글도 있구나라고 눈을 치뜨게 만드는, ‘야만과 비인간이 이리 극성인’ 시대의 사회를 향한 성결인의 책임과 의무를 아프게 묻는 <2025년 설>이었다. 편집위원이라면 시대의 변화와 그에 따른 요청에 민감할 수밖에 없을 터이니 단톡방의 글이 알려진 다음 반응은 어떤 색깔일까.

▨… 우리 시대의 사려깊고 존경받는 복음신학자로 그 이름을 알린 프란시스 쉐퍼 목사는 미국의 미래에 대해 비관적이었다. 그는 미국인들이 소중하게 생각하는 ‘개인적인 평화와 풍요’가, 경제가 위축되면 파시스트식 질서로 향하는 길을 열어줄지도 모른다고 우려했다. (제레미 리프킨, 『엔트로피』) 아직은 아니지만 미국교회는 파시즘이 미국에서 득세할 경우까지 염두에 두고 있다. 코로나의 혼란에서조차 아직 제대로 회복하지 못하고 있는 한국교회적 현실에서 우리 성결인들은 단톡방에서만이라도 성결교회가 서 있는 그 자리를 직시하고 있는지 물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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