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아 방주와 모세 갈대상자는 같은 의미
주만 온전히 믿고 안에 있으면 모두 구원
세속화 막게 역청과 진으로 꼼꼼히 메워야
구약성경에서 ‘상자’로 번역된 히브리어 ‘테바(Tebah)’는 구약 전체에서 노아의 ‘방주’와, ‘갈대상자’라는 말로 두 번 사용되었다.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면, ‘테바’를 통하여 노아의 가족이 구원받았고, 어린 모세가 물에서 건짐받아 살았다. ‘테바’로 번역된 노아의 방주와 갈대 상자는 동일한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동력원이 없었다는 것이다. 현대적인 의미로 직설적으로 표현하자면, 엔진이 없었다. 이것이 ‘테바’의 특성이었다.
그 이유는 전적인 하나님의 능력으로 구원하시겠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인간의 어떠한 노력과 힘을 허용하지 않았다.
노아의 방주와 모세의 갈대 상자를 오늘날 신약 시대에 적용해 보자면, 교회의 모형으로 볼수도 있다. 세상을 물로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심판을 이겨내며 그 안에 들어가 있는 자들을 구원해 내는 역할을 방주가 감당했기 때문이다.
아무리 비바람이 심하고 물결이 높고 파도가 거세어도, 방주 안에 들어가 있는 자들은 구원을 받았다. 모세의 갈대 상자도 마찬가지이다. 애굽의 바로 왕이 세상을 지배하던 시대에도, 하나님께서 세상을 구원할 한 사람을 준비하시고, 나일강의 거대한 파도와 물결 속에서 모세를 보호하고 지켜 내었던 역할을 감당한 것이 갈대 상자였다.
그렇기에 노아 방주와 모세의 갈대 상자를 지칭할 때 의도적으로 ‘테바’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하나님의 구원을 강조하였던 것 같다. 그렇기에 구약의 테바는 신약의 교회의 중요한 모형이라고 할 수 있다. 구약의 테바에 인위적인 동력을 갖추지 않았던 것처럼, 교회도 인위적인 동력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즉, 세상에서 구원을 위하여 준비된 하나님의 교회는 인간의 노력과 힘, 능력과 기술로 움직여 나가는 공동체가 아니다. 오히려 인위적인 요소들이 사라져야 하며,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그분을 중심으로 공동체가 움직여 질수 있도록 할 때, 어떠한 파도와 풍파 속에서도 헤쳐 나갈 힘을 주님께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심란한 세상의 파도 속에서 그 파도만 보고 풍파만 보고서, 그것을 헤쳐 나가기 위해 인위적으로 인간의 힘이 결집 된 동력을 만들고 노를 만든다면, 그때부터 교회 공동체는 하나님이 이끌어가시는 공동체가 될 수 없다.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교회를 향하여 달려오는 큰 파도 앞에서, 그것이 무섭고 두려워 교회가 인위적인 것을 설치하고 만들어 낸다면 그것이 오히려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역사하심을 막는 방해물이 된다는 것이다.
그냥 큰 파도 위에 테바를 띄우라. 그리고 그 파도와 함께 떠내려 가도록 허락하라. 그러나 그 파도를 주장하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께 전적으로 기도해야 한다. 도우심을 요청해야 한다. 그때 하나님은 테바를 인도하시고, 이끄셔서 가장 안전한 곳으로 준비된 곳으로 인도하신다.
노아의 방주 안에 있던 사람들이 40일 동안의 큰 물 심판 속에서 어떠했을지 생각해 본 일이 있는가? 그들은 비록 방주 안에 있었지만, 거반 죽은 것과 다름없는 자들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극심한 물 심판을 처음 경험한 자들이었기에, 그들은 배 안에서 하나님께 구원을 요청하며 전적으로 기도하고 매달렸을 것이다. 결국 그 기도가 하나님을 움직여 테바를 인도하였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준비하셨을 테지만, 준비하신 것을 이루는 것은 기도이다.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애절한 간구이다. 오늘날 우리 교회에 필요한 부분이 바로 이 부분이지 않을까?
마지막으로 하나 더 언급하고 싶은 것이 있다. 모세의 부모는 테바를 만들 때, 역청과 진으로 꼼꼼히 갈대 상자에 발랐다고 한다. 물이 새면 안되기 때문이다. 아무리 테바가 훌륭한 모양을 하고 있더라도, 재료를 잇고 있는 그 틈 사이를 역청과 진으로 메우지 않으면 테바는 그 기능을 감당할 수 없다.
그렇기에 모세의 부모는 울면서 간절히 기도하며 역청과 진을 칠하였을 것이다. 아마도 역청을 칠하면서, 진을 칠하면서 눈물로 뒤범벅이 되지 않았을까? 그러한 열정으로 테바를 만들어었기에 어떠한 물도 세지 않아, 바로 공주 앞까지 인도하심을 받을 수 있었다.
오늘날 교회도 마찬가지이다. 세속의 물결이 교회 안으로 들어와 세속화되지 않도록 역청과 진을 바르는 일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오늘날 교회라는 테바에 역청과 진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필자는 눈물과 간절한 기도가 그 역할을 감당할 수 있다고 본다. 모세의 부모가 눈물과 간구로 역청과 진을 칠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노아의 방주 안에 있던 자들이 하나님의 물 심판이 진행되는 40일 동안 하나님께 간절히 간구하였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오늘날 교회도 구성원들의 눈물과 간절한 기도가 역청과 진의 역할을 감당하여 세속화의 물결을 막고, 테바를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케 하는 도구가 되지 않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