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그 자녀들에게 주시길 원하는 최고의 선물은 무엇일까? 바로 성령이시다. ‘배꼽의 수수께끼’라는 말이 있다. 배꼽의 신비라고도 할 수 있겠다. 모든 게 풀어져도 마지막까지 안 풀리는 것을 두고 일컫는 말이다. 『꿈의 해석』에서 그 자존심이 강한 프로이트도 배꼽은 해석이 안 된다고 자인할 정도였다. 인체의 신비도 그러할진대 성령의 신비는 오죽하겠는가. 성령의 신비는 그리스도 밖에서는 결코 알 수 없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라도 설명이 쉽지 않다. 하지만 성령의 신비는 사모하는 자에게는 활짝 열려 있다.
이병돈 전도사는 홍종현 목사의 후임으로 은산교회의 담임교역자가 되었다. 무보수 교육전도사로 1년 6개월 동안 묵묵히 충성한 자에게 주어지는 선물처럼 여겨졌다. 은산교회는 이 전도사의 모교회로, 시골이지만 주일예배에 180명 이상 모이는 자리가 잡히고 연조가 있는 교회였다. 전도사가 감당하기에 좀 버거운 감이 있는 교회였다. 성령 체험이나 은사 경험이 풍부한 성도들도 많았다. 사역의 경험도 있었지만, 이 전도사는 그런 방면에 아직 깊지가 않았다. 그래서 이 전도사는 성도들을 대할 때마다 자신의 빈곤함을 느끼게 되었고, 하나님 앞에서도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무엇보다 목회를 위한 영적인 능력이 필요했다.
그때부터 이 전도사는 목적기도를 드리게 되었다. 영적 대각성과 부흥을 경험하는 성령의 은혜를 집중적으로 구했다. 기도의 제목과 내용은 오직 성령 충만이었다. 깊은 은혜 체험에 마음이 다급했고 늦은 감이 있는 것 같아 후회도 되었다. 외면상 목회의 본문에 충실히 임하고 있었지만, 내면으로는 성령의 강력한 체험을 사모하는 마음에 사로잡혔다. 그래서 칠보산기도원, 교역자수련회, 오순절집회, 산기도 모임 등 가리지 않고 쫓아다녔고, 은혜를 사모하는 간절한 기도가 복받치곤 하였다. 기도할 때마다 눈물이 앞을 가렸고 한 시간 반 정도의 기도는 예사였다. 1963년 이 전도사는 교역자의 영적 부흥을 목표로 열린 계룡산 집회에 참석했다. 교역자만 400여 명이 모였고, 기도와 분위기가 정말 뜨거웠다. 그런데 집회 중에 갑자기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했고, 빗물이 계룡산을 뒤덮어 천막이 쓰러지고 흘러내린 물이 발목 위까지 차오르게 되었다. 집회는 중단되었고 숙소나 집회 장소에 머무를 수 없게 되었다.
모든 사람이 내려갔지만 그는 혼자 산에 남았다. 오전 10시 경이었다. 그는 한 바위에 자리를 정하고 앉아 특별한 각오로 기도하기 시작했다. 폭우는 계속되었고 온 몸이 젖었다. 산 전체를 뒤덮고 쏟아져내리는 물은 무서울 정도였다. 하지만 얍복강의 야곱과 같은 심정으로 하나님 앞에 엎드렸다. ‘은혜를 주지 않으시면 내려 갈 수 없다’는 사즉생(死卽生)의 각오로 시작한 기도는 폭우 속에서 4시간이 넘도록 계속되었다.
온 힘을 쏟아붓는 열정의 기도였다. 신기하게도 기도 중에 힘이 솟는 영력 있는 기도가 나왔다. 목회를 위해 영적 능력을 갖고자 목숨을 드린 기도에 하나님이 응답하신 것이다. 하나님의 임재가 느껴지며 온 몸이 뜨거워졌다. 몸의 무게감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영적 능력에 사로잡히게 되었고, 다리와 무릎을 짓찧는 격렬한 진동에도 몸에 전혀 상함이 없었다. 성령의 강력한 임재와 역사를 체험한 것이다. 그뿐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상태를 보게 되어 ‘마음을 찢으며’(호 2:13) 마음으로 우는 영적인 통곡의 체험도 하게 되었다. 오후 4시에 그 바위에서 일어났으니 6시간을 기도한 것이었다.
이병돈 목사는 훗날 이렇게 회고했다. “그 기도를 통해 성령체험을 분명히 경험할 수 있었고, 성령세례와 거듭나는 은혜는 전혀 다른 하나님의 역사인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 이전에도 성령의 역사를 몇 차례 경험하였지만, 이번 같이 성령이 충만한 내적인 감격이나 기쁨 그리고 영적인 자신감을 갖게 된 것은 처음이었다.” 그에게 성령세례가 임했던 것이다.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