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32:9~12)

새해를 힘 있게 열어나가지 못하도록 우리를 방해하는 두려움은 무엇인가요? 야곱이라는 인물이 일평생 직면해야 했던 두려움에 대해 생각해 보고 싶습니다. 형을 두 번씩이나 속인 야곱은 형 에서의 위협을 피해 외갓집이 있는 밧단아람(하란)으로 가서 20년을 보내며 일가를 이루었습니다. 외삼촌 라반의 재산 가운데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는 달아나듯 그곳을 떠나 고향으로 돌아옵니다. 그러나 고향은 동생 야곱에게 적대감을 품고 있는 에서가 버티고 있는 곳이었습니다. 야곱은 두려움을 벗어버릴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마하나임에서 형에게 심부름꾼을 보내 자기가 돌아오고 있음을 알립니다.

심부름꾼은 에서가 부하 사백 명을 데리고 야곱을 치려고 이리로 오고 있다고 보고합니다. 공포에 사로잡힌 야곱은 가족과 가축을 두 패로 나눕니다. 에서가 한쪽을 치면 다른 쪽이라도 피하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도 불안이 가시질 않았습니다.

그는 그때야 오래전 고향을 떠날 때, 벧엘에서 돌베개를 베고 자던 중 그에게 나타나신 하나님이 주신 약속을 기억해 냅니다. 땅과 자손을 주시겠다는 약속, 어디를 가든지 지켜 줄 뿐 아니라 다시 이 땅으로 데려오겠다는 약속입니다. 그는 비록 고생스럽기는 했지만 자기가 지금까지 누리고 산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비로소 깨닫습니다. 그리고 야곱은 그것을 누릴만한 자격이 없었음을 진실하게 고백합니다. 또 야곱은 형 에서의 노여움으로부터 지켜달라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합니다. 이후에 벌어진 이야기를 우리는 잘 압니다. 그날 밤에 옛사람 야곱은 죽었고 새로운 존재인 이스라엘이 탄생했습니다. 그는 더 이상 남의 발목이나 잡던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절름거리는 다리는 그의 옛 자아의 죽음을 상징합니다. 자기를 중심으로 세상을 바라보던 사람은 그 밤에 죽었습니다. 

죽은 자는 더 이상 누군가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아침 해가 밝아오자 그는 그곳을 ‘브니엘’이라 칭합니다. ‘하나님의 얼굴’이라는 뜻입니다. 자기가 죽자 비로소 하나님이 보인 겁니다. 베델에서 하나님을 만난 후에도 야곱은 새사람이 되지 못했습니다. 밧단아람에서의 20년 세월도 그를 진정한 믿음의 사람으로 만들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얍복강 나루에서의 경험을 거쳐 그는 마침내 하나님과 만난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는 형 에서를 향해 나아가며 몸을 굽혀 절을 합니다. 비굴한 몸짓이 아니라 형 에서와의 화해를 바라는 그의 진실함의 표현이었습니다. 형 에서도 절름거리며 걷다가 땅에 엎드리곤 하는 동생의 모습을 보고 그동안의 적대감을 내려놓습니다. 연민과 사랑이 그를 사로잡습니다. 두 형제는 서로 목을 끌어안고 함께 울었습니다. 야곱이 형 에서에게 한 말은 성경에서 가장 아름다운 말 가운데 하나입니다. “형님의 얼굴을 뵙는 것이 하나님의 얼굴을 뵙는 듯합니다”(창 33:10).

적대감이 넘치는 세상을 따뜻한 환대의 공간으로 바꾸어 나가는 길이 있습니다. 두려움이 지배하는 삶에서 새로운 희망의 내일을 여는 길이 있습니다. 우리를 짓누르고 있는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삶의 환희를 맛볼 수 있는 길이 있습니다. 내가 죽는 경험입니다. 그리고 내가 다시 사는 경험입니다. 주님의 선하신 능력으로 내가 변화되면 가능합니다. 

주님은 새해에도 선한 능력으로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그 선한 능력을 믿고 의지하면서, 삶의 두려움일랑 다 집어 던지고, 용기 있게, 힘 있게, 활기차게 새해를 살아가시길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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