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력-목회력 중심으로
1년 설교 계획 세워놓고
성도 개개인 신앙 강화에
우선 순위 두고 보살펴야
새해 전망은 너무 어둡기에
희망-위로의 메시지도 필요
교회의 공적 역할 강조하고
급변하는 환경에도 맞춰야
2025년 을사년의 새해가 밝았다. 새해가 시작되면 농부가 일년 농사 계획을 세우듯 설교자는 일년 동안의 영농(靈農)인 설교계획을 세워야 한다. 칼 바르트는 가장 바람직한 설교로 설교자가 매일 성경을 읽으며 묵상해서 얻은 은혜를 전하는 것이라 하여 인위적인 계획보다는 영감에 더 비중을 두었다. 반면에 존 칼빈은 설교를 주일마다 열리는 학교라고 보았다. 그 말은 모든 학교에 교과과정이 있는 것처럼 온전한 그리스도인을 양육하는 목표를 지닌 설교가 구체적인 계획 아래 행해져야 된다는 의미이다.
관성과 체계성에도 도움이 되고 나아가 성도들의 신앙성숙에도 도움이 된다. 이렇게 계획된 설교 하나하나가 칼 바르트가 제언하는 것처럼 설교자가 먼저 깊은 묵상을 통해 은혜받은 ‘작품’으로 만들어 진다면 그것이야 말로 설교자가 꿈꾸는 이상적인 설교가 아니겠는가!
설교는 설교자 각자의 작업이고 설교자와 설교 현장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일률적인 설교계획을 제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다만 새해 설교계획을 세우는데 다음과 같은 몇가지 지침을 염두에 두면 도움이 될 것이다.
첫째, 설교자는 설교계획과 관계없이 가장 소중하게 설교해야 하는 핵심 주제를 반복적으로 설교하자! 60여 년 동안 설교자로 활동한 조 맥키버 목사는 최근 Church Leaders 에 자주 반복해서 전해야 할 7가지 강력한 설교 주제(7 Powerful Sermon Topics You Should Repeat Often)를 게재했다.
1. 예수 그리스도만이 세상의 구원자이시며 유일한 구원자이시다.
2. 교회는 지금부터 영원토록 주님의 계획에서 필수불가결한 것이다.
3. 구원은 십자가로 말미암은 것이다.
4. 우리는 선행으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한 사역으로 구원받는다.
5. 믿음이 있으면 기도하게 된다.
6. 불이 태워짐으로써 존재하듯 교회는 전도로, 선교에 의해 존재한다.
7.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말씀이며 성도가 매일 먹을 영적 양식이다.
위의 7가지 강력한 주제들을 계속 전하라. 이것들은 단순한 설교 주제이지만 기독교의 영적 진리를 깨닫게 하는 가장 좋은 교사일 수 있다.
둘째, 설교계획은 교회력(church year)과 목회력(ministry year)을 중심으로 수립하자! 교회력이란 성삼위 하나님의 구속의 역사를 시간 속에 옮겨 놓은 것으로 축제절기(대림절부터 성령강림절)와 무축제 절기(성령강림절 이후부터 대림절 직전까지)로 나뉜다. 일부 교단에서는 무축제 절기를 창조절이라 지칭하기도 한다.
이런 원초적인 교회력이 지금은 교회와 국가, 사회 등의 필요에 의해 대폭 확장되었다. 만일 이런 확장된 교회력을 따라 설교하다 보면 일년 52주가 전부 교회력이 정한 ‘행사성 설교’가 될 것이다. 설교는 행사의 식사(式辭)가 아니기에 연중 설교 전체를 교회력에 의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다만 교회가 성서와 전통이라는 두 기둥으로 이루어져 있기에 설교자는 교회력 가운데 교회 전통의 핵심을 이루는 절기들에 대해서는 집중적으로 설교할 필요가 있다.
연중 설교계획의 또 다른 축은 목회력이다. 교회의 연중 목회 계획과 설교는 불가분리의 관계에 있다. 목회자인 설교자는 설교를 통해 새해 목회의 목표와 방향을 실현하기 마련이다. 가령 1월의 목회 주제를 새로운 출발로 잡았다면 교회력을 반영한 주현절에 관한 설교를 한 주 한 다음 나머지 주간은 목회적 주제로 전개함으로 교회력과 목회력의 조화를 꾀할 수 있다.
셋째, 설교의 일차 목표를 성도 개인의 온전한 신앙 강화에 맞추자! 설교는 궁극적으로 ‘온전한 성도의 양육’에 그 목표가 있다. 동시에 설교는 회중과의 대화이다. 이 대화로서의 설교는 두 가지 사항을 고려해야 한다. 우선 대화의 상대인 회중의 필요와 요구를 파악하고 그것을 충족시켜주어야 한다.
통계에 의하면 회중들은 평안과 위로, 행복과 소망 같은 주제를 가장 듣고 싶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대사회가 전쟁과 같다보니 이런 기대는 당연한 것이고 어쩌면 모든 세대를 통틀어 불변의 요구사항일는지도 모른다.
특별히 2025년의 전망이 정치 경제 사회등 모든 면에서 짙은 회색이기에 어느 때보다도 희망과 위로 그리고 용기의 메시지가 필요하다. 종교를 갖는 일차적인 이유가 마음의 평안이고, 우리 하나님이 샬롬의 하나님임을 감안하면 매달 한번씩 이런 주제를 다루는 것은 긍정적이다.
특히 1월은 새롭게 출발하는 의미가 강하기 때문에 컴퓨터를 재부팅하는 것처럼 각자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는 관점을 제공해 주는 것이 필요하다. 성경에는 부정을 딛고 새롭게 출발하는 이야기들로 가득하지 않은가? 예를 들어 다음 네 사람의 인생 재부팅은 회중에게 새로운 관점을 제공해 줄 것이다:
모세가 살인을 저질렀지만,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방법.
남편과 아들을 잃은 나오미가 새롭게 시작하는 방법.
다윗이 간음을 범한 후에 새롭게 시작하는 방법.
베드로가 공개적으로 예수를 부인한후 새롭게 시작하는 방법.
나아가 설교는 일종의 교육이다. 따라서 교육자로서의 설교자는 회중의 성숙을 위한 계획을 세워야 한다. 온전한 성도로의 성숙은 다양한 측면들이 균형을 잡을 때 가능하다. 이를 위해 설교자는 다양한 측면들을 살펴보고 구체적인 주제를 개발할 필요가 있다:
신앙적인 면- 예배, 찬양, 구원, 전도, 선교, 영성, 신앙, 은사, 회개,
인격의 성숙-, 자아성찰, 의미, 보람, 가치관, 자존감, 성품, 인내,
적극적인 삶- 희망 비전, 미래, 성공, 집중, 훈련, 직업
건강한 인간관계-교제, 친교, 봉사, 헌신, 관계, 배려, 소통 등
넷째, 설교를 통해 공적인 기독교의 성격을 강화하자! 한국의 기독교가 개인적 신앙에 치중해왔다는 것은 익히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다 보니 복음의 공공성이라든지 교회의 역사적, 공적 책임 등에 대해서는 소홀하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사상 최초로 종교인구가 50% 미만으로 떨어지고 기독교인 인구가 급격하게 줄어드는가 하면 교회에 나가지 않는 가나안 신자가 29.3%에 이르는 현실에서 교회에 쏟아지는 개인화 신앙지적을 뼈아프게 받아들여야 한다. 사실 국가나 사회로부터 유리된 기독교나 교회는 존재하지 않는다.
더욱이 새해는 탄핵정국에 따른 국내 정치적 불안전성과 민심의 분열, 국내 기업규제 환경의 지속, 미국 트럼프 정부의 보호무역정책 강화, 중국의 과잉생산과 시장 교란, 북한의 도발 등으로 우리 나라 뿐 아니라 전세계가 더 어려운 상황에 봉착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 최근 기후 문제로 홍역을 치뤘는데 미국과 유럽 주요국이 극워 성향의 정권이 들어서면서 기후보조금마저 줄어들 것이란 예측이 나오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2025년에는 65세 이상의 인구 비율이 20%를 초과하는 초고령사회에 진입할 것으로 예상되어 사회의 동력이 갈수록 약화될 전망이다.
이런 회색빛 전망은 기독교인이라고 피해갈 수 없다. 따라서 설교자는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에 대해 기독교적인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설교가 시사보고서일 필요는 없지만 공공에 대한 관심없는 설교는 교회와 복음을 사화와 격리된 고도(孤島)로 몰아넣을 것이다. 따라서 설교자는 공교회성 강화를 위한 키워드들인 공의, 평화, 인권, 화해, 통일, 환경과 기후 등을 설교 주제에 포함시켜야 한다.
다섯째, 변화된 환경을 선도하는 투트랙 설교를 시도하자! 코로나의 위기를 극복하는데 일등 공신 역할을 한 온라인 설교는 On&Off로 대변되는 4차 산업혁명의 소통 방식으로 당당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특히 심방과 전도라는 전통적 목회수단이 제한되는 상황에서 온라인 설교는 시공간을 초월하는 중요한 전도의 기능까지 수행하고 있다.
이렇게 변화된 상황에서 온라인 설교가 그 기능을 발휘하려면 믿지 않는 자들이 접근할 수 있는 삶의 의미와 가치, 정체성 등의 보편적인 주제 속에 복음을 실어나르는 설교적 전환이 필요하다. 특히 지식정보화 시대의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킬 수 있는 다양한 지식 정보와 자료들 및 그림이나 영상등 시각 자료들을 활용할 필요가 있다.
반면에 수요예배나 새벽예배에 참여하는 성도들을 위해서는 성경의 깊이를 파고드는 강해 설교가 필요하다. 이러한 설교의 투 트랙 전략으로 설교자는 교회 밖 불신자와 교회 내 적극적인 성도 양자에게 적합한 복음을 전달할 수 있을 것이다.
갈수록 목회 환경이 어려워지고 있다. 이럴 때 교회가 다시 일어서는 길은 말씀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주여, 이 땅의 설교자들을 도우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