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남열 장로-박용연 권사
대를 이어간 선행 이야기

황해도 출신 고 이남열 장로, 약국으로 큰돈 벌고
신학생 위해 STU에  2003년부터 장학금 전달해
재테크에 밝았던 아내 박 권사도 총 30억원 쾌척
3남 이창구 박사도 2009년부터 꾸준히 11억원 

돈을 주면 오늘은 먹고 살 수 있지만 공부를 하면
미래를 준비할 수 있습니다

기도만이 하나님으로부터
영력을 받는 
유일한 길입니다

따뜻한 마음에 담긴 나눔은 각박한 세상에 희망의 빛을 밝힌다. 고 이남열 장로 박용연 권사 가정이(천호동교회) 대를 이어 나눔을 실천하고 있어 주목받고 있다. 이 장로 가족들은 서울신학대학교에만 총 58억 3,500만원을 기부했다. 이 가문의 통 큰 기부로 세워진 ‘이남열 박용연 장학재단’은 지난 17년간 1,190명에게 11억원이 넘는 장학금을 지급했다. 또 해외에 신학교와 교회를 세우는 등 선교에도 큰 발자국을 남겼다.

 

이남열 장로, “배움이 가장 큰 투자”
1919년 황해도에서 태어난 이남열 장로는 북한에서 의사 시험을 준비하다가 해방 후 서울로 왔다. 가진 것 없이 홀로 월남한 탓에 남산에서 노숙하면서 낮에는 장사를 하고 밤에는 의료 강습소에서 공부했다. 6.25전쟁으로 대구 칠곡으로 피난한 후에는 촉탁의사 면허를 받아 환자를 돌보기도 했다.

그러다가 장티푸스를 앓으며 죽을 고비도 있었다. 그때 그는 하늘에서 내려온 동아줄을 붙잡는 꿈을 꾼 후 놀랍게도 열이 떨어지고 회복했다고 한다. 이후 그는 더 독실한 신앙인으로 거듭났다.

전쟁 후 서울 마포구 염리동에 첫 번째 약국을 개원한 이 장로는 이후 건강을 이유로 1957년 강동구 천호동으로 성심당약국을 옮겨서 아픈 사람을 돌보며 살았다. 자녀들은 “약국을 개원할 때만 해도 강동구는 서울 변두리였는데, 당시에는 의술 행위도 허락해서 그곳에서 밤낮으로 환자들을 돌보며 성실하게 일하셨다”라고 전했다.

이 장로는 약국을 운영하며 번 돈으로 목욕탕 사업도 하고, 주변 땅을 사서 건물을 짓는 데 투자해 엄청난 부를 이뤘다. 한때 강동구에서 세금을 가장 많이 내는 부자로 알려졌다. 하지만 그는 늘 검소했다. 자기 소유의 자가용 한 대 없이 늘 자전거를 이용했고, 짜장면 한 그릇도 사 먹는 법이 없었다고 한다. 가족들에게조차 돈 쓰는 것을 아껴서 셋째 아들 이창구 박사가 “학창 시절 우리 집이 부자인 줄도 모르고 자랐다”고 말할 정도로 그는 왕소금이었다. 그러나 그는 교육과 선교를 위해서라면 통 크게 쓸 줄 아는 사람이었다. 특별히 인재 양성에 남다른 관심이 있었다.

1960년대 가난한 시절, 이 장로는 행상하는 사람들을 많이 도왔는데 유독 학생들에게 공부를 독려하며 학비를 지원했다고 한다. ‘돈을 주면, 오늘은 먹고 살 수 있지만 공부하면 미래를 준비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그의 지원을 받아 훗날 은행 지점장과 기업체 사장, 대학교수, 박사, 목회자 등 많은 인재가 배출되었다고 가족들은 기억했다.

 

장학재단 꿈이뤄
이렇게 교육을 중요하게 생각했던 이남열 장로는 장학재단을 세우겠다는 계획을 세우게 된다. 장학기금은 한번 쓰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재생산되는 미래를 위한 투자라는 신념 때문이다. 특히 목회자가 되기 위해 공부하는 신학생들을 돕기 위한 마음이 컸다. 그래서 교단 신학교인 서울신학대학교에 많은 기부를 했다. 

이남열 장로의 첫 기부는 2003년 서울신대 ‘1인 1평 기부 캠페인’ 후원금 200만원이었다. 기부의 시작은 미약했지만 나중에는 창대해졌다. 1년 후 이 장로는 5억원을 또 서울신대에 기부했다. 그것도 교통사고로 병원에 입원한 상황에서였다. 당시 병문안을 온 최종진 총장에게 “목사가 될 학생들에게 사용되길 원한다”며 자신이 직접 쓴 ‘장학증서’를 전달했다고 한다. 이때 기부한 5억원은 ‘이남열 장학금’이라는 이름으로 형편이 어려운 신학생들에게 지급되었다. 

그 돈은 그냥 공부만 열심히 하라고 준 돈이 아니었다. 그는 “성결교회에서 꼭 목회를 하겠으며, 그렇지 않을 경우 장학금을 반환하겠다”는 서약을 받고서야 장학금을 전달했다고 한다. 교단을 사랑하는 마음이 그만큼 각별했던 것이다. 이후에도 인재 양성을 위한 나눔은 계속되었다. 2008년 그는 또 다시 10억 2,000만원이란 거액을 기부했다. 이 돈은 지금의 서울신대 ‘이남열 박용연 장학재단’이 출범하는 밑거름이 되었다. 

이 장로의 기부는 대학 뿐만이 아니다. 천호동교회에도 개인 재산 10억원을 헌금해 ‘남해장학재단’을 설립했다. 돈이 없어서 학업을 못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다. 그의 교육지원 사업은 국내외를 가리지 않았다.

 아프리카 케냐에 나이로비신학교를 비롯해 초등학교와 중학교, 교회를 세웠다. 또 몽골의 울란바토르에 천호교회, 중국 북경에 북경베이징아카데미(신학)를 설립하는 등 교육선교에도 남다른 애정을 쏟았다. 이외에도 북한 돕기, 학교, 병원, 복지기관 등 이 장로의 나눔은 계속 확산됐다.

 

교회에도 아낌없이 나눠 
독실했던 이 장로는 교회 내에서도 봉사와 헌신을 아끼지 않았다. 천호동교회 국내외 선교를 위해 많은 헌금을 했고, 그의 후원 덕분에 국내에 4개 교회를 개척했다. 1970년대 천호동교회가 지금의 자리로 이전할 때는 용지 구입을 위해 자기 소유의 빌딩을 팔았다. 서울 중랑구 면목동에 있던 목욕탕을 팔아 용지 구입에 기부한 것이다. 현재 가치 250억원 이상이 되는 고액이었지만 이 장로는 아낌없이 헌신했다. 그리고 건축위원장을 맡아 성전을 완공시켰다. 아내 박용연 권사는 “교회당 건축비를 정산할 때 상당한 돈이 비었는데 아무 말 없이 사비로 채워 넣었다”며 “맡은 일은 어떻게든 책임지고 마는 성격이었다”고 회상했다.

약국에 불이 났는데도 불은 끄지 않고 약속했던 선교헌금을 전달한 것은 유명한 일화로 남아있다. 이 장로가 한 시골의 목회자에게 후원금을 전달하기로 한 날 공교롭게도 약국에 불이 났다. 금세 큰 소동이 났고 불이 난 광경을 보고 돈을 받으러 왔던 목사는 발걸음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 장로는 돌아서는 목사를 붙잡고 약속한 헌금을 손에 쥐어 줬다고 한다. 눈앞에 약국이 불타고 있는데도 약속을 지켜야만 직성이 풀리는 우직한 장로였다. 소천하기 전까지도 그는 비가 오면 교회에 비 새는 곳이 없는지, 물이 막힌 곳은 없는지를 살필 정도로 교회를 사랑했다고 한다. 이런 아버지의 충성과 헌신 덕분에 하나님께서 큰 복을 주신 것 같다고 자녀들이 입을 모았다.

 

부창부수, 남편 뜻이어
이남열 장로가 이렇게 교육과 선교에 헌신할 수 있었던 것은 아내 박용연 권사가 항상 곁에 있었기에 가능했다. 1940년대 황해도에서 금융조합 직원으로 일한 적이 있는 박 권사는 집안 살림뿐만 아니라 남편이 벌어주는 돈도 관리하고 약국을 운영하는 일도 도맡았다고 한다.

박 권사는 예금과 적금 등 돈을 효과적으로 불리는 데 능했다. 쓰고 남은 돈을 저축하는 게 아니라 쪼개서 저축하고 이익이 날 수 있는 금융상품을 애용했다. 지금으로 말하면 재테크를 잘한 것이다. 한번은 남편 이 장로가 사업 자금이 부족해서 부도날 상황에 빠졌는데, 박 권사가 준 돈으로 위기를 모면했다고 한다.

여린 외모와 달리 박 권사는 신앙심이 강하고 무엇보다 통이 컸다고 한다. 이 장로가 서울신대에 10억원을 더 헌금한 것도 박 권사 때문에 가능했다고 가족들이 귀띔했다. 막내딸 이혜숙 권사는 “당시 엄마가 아빠한테 ‘남자가 쩨쩨하게 5억원이 뭐냐. 하려면 10억은 해야지’라고 기부를 더 하라고 부추겼다”고 말했다.

박 권사는 이 장로보다 서울신대에 더 많이 기부했다. 2010년 이 장로가 소천하자, 남편의 뜻을 따라 장학재단에 20억원을 기부했다. 당시 100주년 사업과 발전 기금 모금을 위해 동분서주했던 유석성 총장이 박 권사에게 후원을 요청하자 그 자리에서 바로 만기 된 적금 20억원 전액을 기부하기로 약속한 것이다. 이후 2022년에도 박 권사는 10억원을 더 헌금해 총 30억원을 장학재단에 기부했다. 개인이 현금 30억 이상 기부한 것은 서울신대 역사 이래 처음이자 최고 금액이다.

대학 측은 이 장로와 박 권사 부부의 통 큰 기부를 기념하기 위해 학교 중앙도서관을 이남열 장로와 박용연 권사의 이름에서 따 ‘남연도서관’으로 명명하며 이들의 헌신을 영원히 기억하도록 했다.

 

기부도 대물림, 자녀들도 동참
이 장로와 박 권사의 아름다운 기부는 자녀들에게까지 이어졌다. 삼남 이창구 박사는 부모님의 유지를 이어 서울신대에 총 11억 1,000만원을 기부했다. 2009년 1억 5,000만원을 시작으로 2024년 9월까지 대학에 꾸준하게 기부하고 있다. 또 100주년기념관 강의실 408호를 이남열관으로 헌납했다.

다른 가족들의 기부까지 합치면 이 장로의 일가족이 서울신대에 기부한 금액은 58억원이 넘는다. 서울신대 역사상 한 가정에서 이뤄진 전무후무한 기부다. 아버지 이남열 장로로 시작된 그의 가족들이 서울신대의 기부 역사를 다시 쓴 것이다.

이 가족의 기부는 결코 돈이 많아서 한 것만 아니다. ‘기부는 사람에게 나눔과 섬김이고, 선교는 생명을 살리는 일’이라고 굳게 믿었고 평생 그 믿음을 실천했기에 가능했다.

막내 이 권사는 “두 분이 외식하는 법도 없고 평소 근검절약이 몸에 배어있는 분들이었다”며 “우리에게는 참 인색한 부모님이었지만 두 분이 베푸는 모습을 보면서 참 신앙인의 모습을 배울 수 있었다”고 고백했다.

이창구 박사도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 남은 재산을 다 쓰고 가셨고 어머니도 2022년 11월 천호동교회에 건축헌금으로 10억원을 기부하면서 남은 재산 40억원을 교육과 선교에 다 기부하셨다”며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가장 귀한 것이 무엇인지 아신 분”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자녀들은 “아버지 어머니의 뒤를 이어 생애 마지막까지 기부와 나눔을 실천하겠다”고 미소를 보였다.

저작권자 © 한국성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