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천벽력 실명’ 5년··· “군선교 새롭게 눈떴어요”
부교역자 사역하다 갑자기 ‘어둠’
4년 가량 새 인생 모색하던 중
뜻밖에도 진중교회 담임 맡게돼
같은 장애 가진 다음세대 돌보고
새로운 삶의 경험도 활발히 나눠
하루아침에 어둠 속에 잠겨버리는 절망의 순간에도 하나님을 향한 소망의 끈을 놓치지 않았다. 김기동 목사의 이야기다. 이 땅을 비추는 빛으로 오신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는 성탄절을 맞아 어둠에서 빛을 찾은 그의 삶의 여정을 살폈다.
“하나님을 한 번도 원망한 적이 없습니다. 시각장애로 한 치 앞을 보는 것이 쉽지 않은 상황이지만, 저의 눈과 손과 발이 되어주시는 ‘가이드 러너’ 예수님을 매 순간 만나고 느끼는 기쁨을 누리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2019년 2월 17일, 여느 주일 아침과 다를 바 없는 평범한 날이었다. 알람 소리를 듣고 휴대폰을 잡으려는데 잘 보이지 않았다. ‘이상하다’ 생각하며 흐린 눈으로 머리맡에 있던 휴대폰을 겨우 찾아 알람을 껐다. 화장실 스위치를 한번, 두 번 밝아질 때까지 계속 켰다. 이상하게도 환해지는 기색이 없었다. ‘아, 전등에 문제가 있구나’라고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부교역자로 사역하던 춘천나눔교회(피종호 목사)에 갈 채비를 서둘렀다.
“화장실에 불이 안 들어와.” 아내 임춘화 사모에게도 말했다. “왜 그래? 불 잘 들어오는데.” 의아한 기색을 숨기지 못한 아내의 말에 김기동 목사(횃불교회)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제야 눈에 무엇인가 이상이 생겼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급히 인근 대학병원에 입원해 여러 검사를 받았지만, 상세불명의 시신경위축이라는 대답만 들을 수 있었다. 눈이 보이지 않는 원인은 끝내 알 수 없었다. 이튿날 병실에서 눈을 떴을 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눈을 몇 번이고 깜빡여도 완벽한 어둠만이 감쌀 뿐이었다.
둘째 딸 허락하신 2월에 찾아온 어둠
남다른 기대 속에 시작한 2019년이었다. 2018년 12월 31일 송구영신예배에서 새해를 기대하며 써 내려간 기도제목 중에는 두 번째 자녀를 허락해주시기를 소망한다는 내용도 있었다. 하나님의 응답도 즉각적이었다. 2019년 2월 11일 사모와 함께 산부인과를 찾아 임신 소식을 듣게 됐다.
“하나님, 저희 가정 가운데 두 번째 귀한 자녀를 허락해 주심에 감사합니다. 이 아이가 건강하게 잘 자라서 이 땅으로 나올 수 있도록 끝까지 지켜주십시오.” 임신을 축하하는 의사의 말에 감사의 고백과 기도가 절로 나왔다. 과함이나 부족함 없이 모든 게 완벽하기만 했다. 불과 6일 후에 갑작스럽게 눈이 보이지 않게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할 수 없었다.
김기동 목사의 현재 시력은 의학적으로 0.02 수준으로 시각장애 1급 판정을 받았다. 몇 시간이고 성경을 마음껏 볼 수도, 일상생활에서도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만 한다. 성도들의 눈을 마주치며 설교를 할 수도 없다. 그럼에도 김 목사에게서는 감사의 기도와 고백을 끊이질 않는다. 하나님이 김 목사를 포기하지 않으셨고, 막혀있던 것만 같았던 길에서 새로운 지경으로 인도해 주셨기 때문이다.
“사역자로서 힘들거나 어려움이 닥쳐올 때 하나님을 먼저 찾고 의지해야 한다고 말해왔습니다. 정작 제가 당황스러운 사건에 직면하자 하나님만 바라보지 못하고 깊은 어두움으로 빠지게 되더군요. 병원에 입원한 지 셋째 날이었을 겁니다. 예수님이 연약한 저를 찾아와 주셔서 사랑해 주신다고 말씀하셨어요.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는 요한복음 3장 16절의 말씀이 마음속 깊이 새겨지는 순간이었습니다.”
다음세대 사역으로 인도하신 하나님
새로운 빛을 품게 된 순간부터 김 목사의 생활과 사역도 달라졌다. 가족들과 강원서지방 목회자들의 지지와 도움으로 몸을 추스르며 사역에 대한 고민도 깊어지던 순간 하나님은 김 목사를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인도하셨다.
사회복지사로 8년 동안 일하다가 뒤늦게 신학을 한 김 목사는 처음엔 사회복지로 눈을 돌렸다. 같은 장애를 지니고 있어 더 잘 도울 수 있지 않겠느냐는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시각 장애를 가지고 있다는 얘기만 나오면 복지관 쪽에서 번번이 퇴짜를 놓았다.
군 선교사로서의 삶도 전혀 예상하지 못한 갑작스러운 한 통의 전화로부터 시작됐다. 2023년 10월경 군 선교로 잔뼈가 굵은 이광훈 목사(평강교회)가 사역지를 놓고 기도하고 있던 김 목사에게 강원도 화천 2포병여단 100대대 횃불교회 담임목회자 선발 소식을 알려준 것이다. 결단하기까지 쉽지 않았지만, 이광훈 목사의 강권으로 결국 지원하게 됐다. 민간 성직자 지원서, 성직자 증명서, 서약서 등 제출해야 하는 서류만 15가지였다. 서류전형은 통과했지만, 군종장교 면접이 문제였다. 면접관이 중증 시각장애에 대한 우려가 크면 영영 통과될 수 없을 터였다.
“시력이 얼마나 나쁘십니까?”라는 면접관의 말에 김 목사는 “장병들을 선명하게 볼 수는 없지만, 가까이에서나마 장병들을 볼 수 있고, 그들을 마음으로 사랑할 수 있습니다”라고 떨리지만 자신 있고 분명하게 답했다. 그러자 “그 정도 시력이시군요. 목사님, 사역을 하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라고 면접관이 말했다.
알고 보니 면접관도 사회복지를 전공해 복지관에서 현장실습을 하면서 시각장애를 가지고 있던 상급자를 만나 함께 일했던 경험이 있었다. 어안이 벙벙했다. 세상적인 기준으로만 보면 시각장애는 분명 걸림돌 작용했었겠지만, 하나님은 그런 장애물마저 하나의 기회로 만들어주신 것이다. 횃불교회는 성결교단과의 인연도 깊다. 강원서지방 소양교회(김선일 목사)가 1991년 9월 14일 군 장병 복음화를 위해 봉헌한 교회가 바로 횃불교회다. 현재는 주일마다 50여 명의 군 장병들이 예배하며 하나님을 알아가고 있다.
시각장애 청(소)년들의 인도자로
감사의 고백으로 군 선교를 시작하게 된 김 목사는 시각장애를 가진 청년들과 청소년들을 위한 ‘다시청’ 사역도 펼치고 있다. 지저스아이즈선교회 협력사역자, 베리어프리 자원활동가로도 활동한다. 시각장애인 축구대회에 출전하거나 맹학교에 입학해 안마를 배우는 가운데 정기적으로 시각장애인 청소년과 청년들을 만나 그들의 자립을 돕고,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하나님을 알아갈 수 있도록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김 목사는 “이 땅에서는 비록 육신의 눈은 어둡지만 영의 눈이 더욱더 밝아져서 소금과 빛의 역할을 감당하며 나아가길 소망하면서 그들을 섬기며 나누고 있다”고 말했다.
김 목사는 “얼마 전 아내와 ‘내가 시각장애인이 되지 않았다면 군 선교와 다시청 사역을 하고 있을까’를 이야기했다. 저와 아내는 이구동성으로 ‘아니’라고 말했다”며 “제게 시각장애가 온 이유를 아직은 다 알 수 없지만 하나는 분명하다. 그것은 ‘이 특별한 다음세대 사역에 제가 필요해서’라고 고백하고 있다”고 말했다.
자신의 삶 속에서 역사하신 하나님을 증거하기 위해 ‘어둠 가운데서도 뛰어가는 수상한 걸음’ 사역도 펼치고 있다. 수요예배나 금요기도회, 찬양·헌신예배, 소그룹 모임에 초대를 받아 삶을 나누고 있다. 자세한 사역 문의는 김기동 목사(010-9688-1884)에게 하면 된다.
오직 감사의 삶으로
중증 시각장애인의 삶을 살아가는 김 목사가 인간 김기동으로서 가장 아쉬운 대목이 있다. 둘째 딸의 환한 미소와 웃는 얼굴을 눈에 담지 못한 것이다. 하지만 김 목사는 어느덧 6살이 된 딸을 바라볼 때마다 감사의 고백이 나온다고 말한다.
“종종 주변에서 ‘둘째 딸의 얼굴을 보지 못한 게 참 안타깝고 아쉽겠네요’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제 마음 한가운데 한 그루의 감사의 나무를 심었습니다. 인간적인 아쉬움으로 제 삶을 매몰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런 상황 가운데서도 저를 통해 이루어 가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기대합니다. 그럴 때 감사의 나무가 1cm라도 자라났을 거라고 믿으면서 말이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