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의 형식은 설교가 무슨 일을 하는지를 고려해서 정해야 한다. 설교의 형식을 정하는 데 있어서 또 하나 고려할 것은 본문의 문학적 장르를 고려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성경의 문학적 장르는 단순히 언어적 장식이 아니라 메시지를 전달하는 수사적 장치이기 때문이다.
성경은 운문과 산문, 시와 서사, 편지와 율법조문, 족보 등 다양한 문학적 장르로 구성되어 있다. 이렇게 다양한 문학적 장르로 구성된 까닭은 다양한 상황에서 독자들에게 효과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서이다. 그러므로 다양한 문학적 장르 혹은 문학적 형식은 특정한 상황에서 수사적 목적을 이루기 위해 말하기 방식이다. 이 때 중요한 것은 본문에서 내용을 배치하는 방식을 통해서 논리적 흐름을 만들기도 하지만 정서적 흐름, 곧 분위기(mood)를 만들어 수사적 기능을 한다는 것이다.
이를 테면, 화자의 의도를 직접적으로 전달해도 좋은 상황에서는 선형적 구조를 따라 직설적으로 말할 것이다. 그러나 경우에 따라 화자는 청자의 저항이 예상되는 상황 혹은 공동체 내부에 속한 청자는 이해할 수 있지만 외부인은 이해할 수 없게 만들어야 하는 상황에서 자신의 의도를 직설적인 방식보다는 간접적인 방식으로 전달하는 것이 효과적일 수 있다. 혹은 화자가 원화자로부터 들고 전달할 메시지를 함축적으로 표현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이 때 화자는 선형적 구조보다는 나선형적 구조를 통해 혹은 비유나 시의 방식으로 내용을 배치하고 감정을 전달하기 위한 다양한 표현들을 포함할 수 있다.
바울서신의 예를 들어 살펴보자. 바울은 기본적으로 1세기 지중해 문화권의 서신 양식을 활용하여 편지를 쓰는데 대개 자신이 목회하던 교회 혹은 사람에게 발생한 특정한 이슈에 대응하기 위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20세기 후반 수사비평이 등장하며 이러한 바울이 그러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 다양한 그레코-로마의 수사적 기법을 활용했다는 것을 밝혀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디아트리베”(διατριβή)이다.
“디아트리베”는 가상적 대화 상대자를 놓고 논쟁을 벌이는 부분을 가리킨다. 바울은 가상적 대화 상대자들을 너 혹은 너희라고 부르며 그들의 반론들을 열거하며 답을 하기도 하고 그들에게 수사학적 질문들을 제기하기도 한다. 로마서나 갈라디아서의 본문들이 그러한 대표적인 예이다. 디아트리베 형식으로 작성된 본문의 분위기는 상당히 치열하고 첨예한 논쟁 상황을 상정하고 있다. 이러한 논쟁적인 본문을 설교하는데 서정적인 분위기의 시적인 설교나 감동적인 이야기 설교를 하는 것은 잘 어울리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오히려 논쟁적 대지설교나 정반합설교가 더 적절할 것이다.
또한 시편 22편과 같은 탄원시를 설교할 때를 생각해보자. 대개 이 시편은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을 예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본래 이 시는 감당할 수 없는 고난 가운데 하나님의 구원을 간구하는 탄원시이다. 그러므로 본문의 수사적 기능을 살린다면 본문의 특정 구절들이 예수의 고난을 예표하는 증거라는 것을 논리적으로 조목조목 입증하는 방식의 설교보다는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고 신뢰하는 믿음의 사람이 수치와 고통을 당하는 문제에 깊이 공감하고 이와 유사한 문제를 현실에서 겪는 청중의 문제와 연결하고, 이러한 문제 가운데 침묵하시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구원의 역사를 행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발견하고 소망으로 이끄는 내러티브 설교 혹은 네페이지 설교가 오히려 더 잘 맞는다고 할 수 있다.
전자의 방식은 본문의 내용을 모형론적으로 이해하는데 효과적일지는 모르지만, 본문이 전달하는 실존적 위기 속 고통의 문제에 대한 정서를 전달하는데는 역부족이기 때문이다.
본문의 수사적 기능을 설교의 수사적 기능과 최대한 조화를 이룰 수 있는 설교의 형식을 골라 설교할 때에 최고의 설교가 나온다. 물론 이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설교자가 본문 속 하나님을 설교자가 설교의 형식이라는 틀에 가두어 놓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본문에서 나와서 청중에게 말씀하시도록 사용되길 원한다면 이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런 설교를 들을 때, 청중은 설교자의 해설이나 설명이 아니라 본문이 말한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