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매는 팥을 닮고 배꽃과 비슷한 감당나무
의연하게 우리 곁에 있으며 다시금 묻는다
“당신의 직무에 걸맞게 할 일을 하고 있는가”

우리 교회에 인접한 ‘태사묘’ 공원에 팥배나무 두 그루가 멋있게 서있다. 거의 매일 새벽기도 후 ‘복돌이’ 산책을 시키면서 하루에 한번은 그 팥배나무 옆을 지나간다. 요즘 그 팥배나무에 무척이나 아름다운 열매가 잔뜩 달려있는데, 팥배나무를 소개하는 이런 푯말이 눈에 띤다. 

“4∼6월에 꽃이 피며, 열매는 팥을 닮았고 꽃은 하얗게 배나무 꽃을 닮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열매는 고열기침가래 치료에 쓰이며, 꽃말은 ‘매혹,’ 한자 이름은 ‘감당’이다.”

조선 중기의 학자 ‘권기, 권행가’ 두 분이 경상도 안동부의 연혁, 인문지리, 행정을 수록하여 1608년에 편찬한 영가지에 팥배나무를 노래한 ‘부사 이양원’ 선생의 시가 실려 있다. “먼지떨이를 흔들며 감당나무 그늘에 앉아 시를 읊나니 직책에 당하여 할 일을 다 했는가 물어본다.”       ‘감당애(甘棠愛)’라는 말이 있다. 감당나무를 사랑한다는 뜻의 갑당애는 ‘정치를 잘 하여 선정을 베푼 사람을 사모하고 칭송하는 마음’을 일컫는다. 일찍이 중국 춘추시대 주(周)나라 초기 ‘소공석(召公奭)’이 감당나무 아래서 송사와 정사를 처리하였다는데서 ‘감당애’라는 말이 유래했다. 전해오는 바에 따르면, 소공은 중국 ‘연(燕)나라’시조로서 선정을 베풀었다. 

특히 소공은 그가 순시하는 마을마다 감당나무를 심어 놓고 그 아래서 공정한 재판을 하고 적절한 정책을 펼쳐 나라 안에 일자리가 없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그런 소공이 죽자 백성들은 전국에 감당나무를 심고 길렀으며, ‘감당’이라는 시를 지어 소공의 공덕을 기렸는데,  시경(詩經)에 실려 있다. 

싱싱한 감당나무를 자르지도 베지도 마라 소백님이 일하신 곳이니

싱싱한 감당나무를 자르지도 꺾지도 마라 소백님이 쉬시던 곳이니

싱싱한 감당나무를 자르지도 휘지도 마라 소백님이 머무신 곳이니 

(소백召伯은 연나라왕 소공석을 일컬음)

바로 그 감당나무가 팥배나무이다. 

우리나라에도, 현대시에도 팥배나무를 소재로 한 아름다운 시 몇 편이 마음에 와 닿는다.  

김경성 시인은 이렇게 ‘팥배나무’를 노래한다. 

“붉은 눈을 먹은 새들이 부리를 씻는 것을 보았다

나뭇가지를 태우며 솟아오르는 태양의 중심을 향하여 날아가는 직박구리의 몸이 물들면서 팥배나무의 붉은 눈이 새의 몸속으로 들어갔다

밤새 수묵화를 그리던 당신은 몸에 묻은 먹물을 닦는지 뒤척거리고 있었다

벼락 맞은 나무는 목이 꺾인 채 다 쏟아내지 못한 푸른 핏물이 계곡을 따라 흐르고 새벽 달 설핏하니 내려앉은 옹달샘은 푸르렀다

새들은 나무의 귀를 씻어서 숲을 열고 마른 풀더미 아래 쌓인 풀씨는 눈꺼풀을 깜박거렸다

‘새들이 삼킨 붉은 눈은 천 개의 꽃이었다’고 당신이 내게 하는 그 말을 가슴에 쓸어 담으며 걷는 새벽,

당신의 심장 속으로 푹푹 발이 빠지는 장은수 시인의 ‘팥배나무 아래서’도 아름답다.  

“다시 선 아차산성 옛 이름들이 맺혀 있다

푸르락 붉으락 하는 가을 숲의 눈동자들 나무도 갑옷을 벗고

먼 하늘을 찌르고

무너진 성곽 길을 행진하는 병사처럼 날아든 비보 안고 무던히도 견딘 시간 평강의 입매도 같은 꽃차례가 얼비친다 허천뱅이 가슴속에 피워 문 붉은 열매 돌 속의 그림자가 바람에 몸을 씻을 때 누군가 저녁 강물에

노을을 풀고 있다“

오랜 역사 속에 우리들 곁에 자리해온 팥배나무, 곧 감당나무는 봄여름가을겨울 멋있고 의연한 모습으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당신의) 직책에 당하여 할 일을 다 했는가 물어본다.”

“너는 아침에 씨를 뿌리고 저녁에도 손을 놓지 말라. 이것이 잘될는지 저것이 잘될는지 혹은 둘 다 잘될는지 알지 못함이라. 빛은 실로 아름다운 것이라 눈으로 해를 보는 것이 즐거운 일이로다.”(전 11: 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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