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족, 총회임원, 교단원로 등 400여 명 참석
전 총회장 박태희 목사가 지난 11월 27일 향년 90세를 일기로 소천했다.
고 박태희 목사의 장례예배는 지난 11월 30일 고인이 시무하던 성락성결교회(지형은 목사)에서 교단장으로 엄수됐다.
부총회장 안성우 목사가 집례한 이날 장례예배에는 유가족을 비롯해 총회임원, 교단 원로, 성락성결교회 교역자·성도, 총회본부 직원 등 400여 명이 참석해 고인을 추모했다.
부총회장 노성배 장로의 기도, 총회부서기 김요한 목사의 성경봉독, 성락성결교회 연합찬양대의 찬양 후 ‘달려갈 길을 마치고’라는 제목으로 설교한 총회장 류승동 목사는 “하나님이 정하신 인생을 무엇으로 채울 것인가의 문제와 달려갈 길에는 분명히 마지막 끝이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며 “바울의 고백처럼 박태희 목사님은 선한 싸움을 다 싸우고 달려갈 길을 마치신 분”이라고 말했다.
류 총회장은 또 “우리가 성령을 따를 것인가 아니면 육체의 욕심을 따라 살 것인가의 싸움을 우리는 인생 내내 싸워야 한다”며 “우리 모두 반드시 성령을 따르는 삶을 살아갈 때 박 목사님처럼 승리자의 대열에 설 수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교단총무 문창국 목사의 고인의 약력소개와 추모영상을 통해 그리운 발자취를 돌아보았다.
고인의 떠남을 아쉬워하며 조사를 전한 전 총회장 여성삼 목사(천호동교회 원로)는 “박태희 목사님 앞에서 저는 아직도 부목사”라면서 고인을 가까이서 섬기며 목회를 배웠던 고인과의 특별한 인연을 소개했다.
여 목사는 고 박태희 목사가 주문진교회를 담임하던 시절 털모자를 쓰고 매일 교회 앞 버스터미널 화장실을 청소하던 일, 성락성결교회 부임 후 뚝섬 주변의 가난한 성도들을 헌신적으로 돌보던 일, 해외 집회 후 귀국할 때면 성도들을 위해 늘 선물 보따리를 싸오던 일 등을 소개하며 고인에 대한 그리움을 표했다.
이어 카이로스중창단의 조가 후 고별묵념 후 유족대표 박찬우 안수집사와 전 총회장 지형은 목사의 인사, 전 총회장 이정복 목사의 축도로 장례예배를 마무리하고 참석자들이 차례로 헌화했다.
헌화를 마친 후 운구위원들이 관을 운구차량에 실었으며 참석자들은 찬송을 부르며 천국으로 떠나는 고인의 마지막 길을 지켜봤다.
고인의 유해는 춘천 동산추모공원에 안장됐다.
한편 고 박태희 목사는 1934년 서울에서 출생했다. 30대부터 부흥회를 다니기 시작해 방방곡곡, 세계 곳곳으로 다니며 부흥회를 인도했다.
1969년 4월 목사안수를 받은 후 주문진교회에서 4년간 시무했으며 성락성결교회에 부임해 말씀운동, 기도운동에 주력하며 교회 부흥의 토대를 마련했다.
제48회 총회장으로 피선되고 총회장 시절 처음으로 교역자 연금 지급을 시작했다.
해외유학생들과 농어촌교회 미자립 교역자 자녀들에 대한 장학금 제도를 시행했다.
서울신학대학교 이사장을 역임하며 봉사했고 초교파적인 부흥사로 널리 활동했다.
이 밖에도 서울중앙신학교 이사장, 군선교후원회 초대회장, 서울신대 후원회장, 한국기독교부흥협의회 회장, 서울특별시 교시협의회 회장, 평화통일 자문위원, 한기총 공동회장 겸 북한교회재건위원장, 강남대학교 이사, 한국기독교지도자협의회 공동회장, 서울특별시 경찰청 경목회장 등 교단 안팎에서 왕성히 사역했다.
고인은 성락성결교회에서 38년간 시무하고 2004년 원로목사로 추대되었으며 은퇴 후에는 성수동 주민자치 위원장을 역임하며 낮은 곳을 돌보는 데 힘썼다.
국무총리상과 대통령상을 수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