힌두교인 이던 워띠가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지난 토요일 한국어 공부를 시작하려고 하는데 워띠가 수줍은 목소리로 “목사님 저 이제 예수님 믿습니다”하는 것입니다. 저는 공부를 가르치려던 것을 멈추고 워띠의 손을 잡고 “할렐루야”를 외쳤습니다.
옆에 있던 소스띠카와 마야도 박수를 치며 좋아 합니다. 마야가 어눌한 한국말로 말합니다. “목사님 우리 네팔에서는 크리스천 되는 것 힘들어요. 저희들도 몰래 몰래 전도를 한답니다.”
그렇습니다. 힌두교가 국교인 네팔에서 기독교인이 된다는 것은 무척 힘든 것 같습니다.
저희들도 워띠가 기독교인이 되기를 고대하면서 중보기도를 드리고 있었지만 이렇게 빨리 예수님을 영접 할 줄은 몰랐습니다. 워띠는 가족 모두가 힌두교인입니다. 무척 고민하며 어려운 결정을 하였으리라 봅니다.
저희 교회에 4월 중순쯤 소스띠카(22세)가 찾아왔습니다. 자기는 네팔 사람이고 암남동 수산물가공단지에서 일하고 있으며 크리스천이라고 소개를 합니다. 이 교회가 프로테스탄트 교회냐고 묻는 질문에 그렇다고 말해 주었습니다.
몇 주가 지난 후 옆 공장에서 일하는 마야(22세)와 워띠(24세)를 데리고 왔습니다. 마야도 네팔에서 침례교회를 다녔다고 합니다. 그런데 워띠는 힌두교인입니다. 하나님에 대하여 전혀 모르는 친구입니다.
룸메이트인 마야는 매일 아침 일어나면 기도를 드리는 그런 신실한 믿음을 가진 청년입니다. 마야는 8살 때 하나님으로부터 큰 은혜를 입었다고 합니다. 백혈병이 걸렸는데 병원에서 의사도 포기를 하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교회에서 목사님께 기도 받고 하나님이 고쳐주셔서 병이 나았다고 간증을 합니다. 그래서 자기는 매일 하나님께 기도를 드린다고 말합니다.
이렇게 이 세 청년은 저희 교회에 정착하게 되었습니다. 룸메이트인 마야에게 물어보니 워띠도 아침에 일어나면 자기처럼 하나님께 기도 드린다고 합니다. 토요일 한국어공부를 마치고 간식을 먹으면서 소스띠카가 “목사님 우리 여기 교회에 5년 동안 있을 거예요” 라고 합니다. 그러자 워띠가 “아니야 10년 있을 거야”라고 덧붙입니다. E-9 비자의 체류기간이 5년인데 연장하면 10년을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소스띠카가 회사 동료 루비나를 전도해 왔는데, 마침 추수감사절 식사로 소고기 불고기가 나왔습니다.
루비나는 힌두교 신자라 한번도 먹어 보지 않아서 못 먹는다고 합니다. 그러자 워띠가 웃으면서 “네팔소와 한국소는 달라요”라고 이렇게 지혜롭게 말합니다.
지난 주일 날엔 예배 시간이 다 되어서 땀을 뻘뻘 흘리며 예배당에 들어옵니다. 왜 늦었냐고 하니 암남동 모지포 마을에 있는 숙소에서 감천문화마을 입구인 교회까지 걸어왔다고 합니다.
모지포 마을에서 교회까지 오려면 고신대복음병원 뒷산을 넘어 오는데 숲이 우거지고 외진 곳입니다. 그리고 시간도 1시간이나 걸립니다.
아내가 산길을 넘어 올 때 숲도 우거지고, 외져서 무서울 텐데 괜찮았냐고 했더니 워띠가 “하나님이 함께 해 주셔서 괜찮아요” 하더랍니다.
요즘 출애굽기 강해 설교를 하고 있는데 워띠가 제 설교를 잘 듣고 있는 것 같습니다. 워띠의 출애굽으로 우리교회 예배당은 신실하고 따끈따끈한 예배자들로 가득 합니다.
“할렐루야” 주님을 찬양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