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20년 9월 6일. 영국의 플리머스 항구를 떠난 메이플라워호에는 102명의 신앙인 승객이 타고 있었다. 차가운 폭풍이 휘몰아쳤던 대서양을 건너 12월 21일 새로운 대륙에 첫 발을 디딜 때까지 모진 고난의 항해 기간에 한 사람이 죽고 두 명의 아기가 태어났다. 삶과 죽음의 기로에서 때로는 살려고 발버둥 쳐도 어쩔 수 없고, 목숨 줄을 놓고 싶어도 반드시 살아야 할 이유가 있는, 인생이란 죽음과 삶이 한배를 타고 가는 것이 아닐까.

▨… 첫 번째 겨울을 지내고 가을이 오기까지 44명이 죽는 악조건 속에서도 그들은 주일마다 모여 오전에는 예배하고 엄숙히 기도하였으며 오후에는 성경을 공부하였고, 평일에는 황무지를 갈아 인디언들이 가져다준 옥수수를 경작하였다. 하늘을 우러르며 예배하는 것이 소명(召命)이라면, 다음 세대를 위한 가르침은 사명(使命), 포기하지 않고 땀흘려 일하는 것은 창세 이후를 살아가는 순명(順命), 죽음도 끊을 수 없는 희망이며 생명의 신비인가.

▨… 마침내 그해 가을, 순례자(Pilgr im)들은 첫 번째 추수감사절(The First Thanksgiving)을 맞아 아메리카 인디언 추장 마사조이트(Massasoit)와 90명의 다른 인디언들을 초대하였다. 곡식의 종자를 건네주었고 첫 겨울의 움막을 지어 주었던 이 친절한 원주민들과 3일 동안 더불어 옥수수로 만든 빵과 고기, 과일 등을 먹으며 서로의 재능을 겨루면서 즐거운 절기를 보냈다. 기쁨은 나눌수록 커진다고 했던가.

▨… 이 즐거운 잔치에 음식이 부족하였다. 인디언 방문단의 규모를 미처 예상치 못한 필그림의 식량 사정을 간파한 추장이 부하들에게 부식 조달을 명하자, 다섯 마리의 사슴과 셀 수없이 많은 칠면조를 잡아 와 식량에 보탰다. 많은 수확보다 생명과 신앙의 자유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 이웃의 작은 도움도 기억하며 더불어 기뻐하는 나눔이 청교도들이 보여준 첫 추수감사절의 정신 아니겠는가.

▨… 하나님께서 친히 택하신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르시기를 “너희는 이 축제를 올리면서 아들과 딸, 남종과 여종, 너희가 사는 성문 안에 있는 레위인, 떠돌이, 고아, 과부들도 함께 즐기게 해야 한다.”(신명기 16:14)라고 명하셨다. 인생은 누구나 나그네인걸 뉘 있어 감히 부정하려 들수 있을까. 감사(Thanks﹣giving)는 감사(Thanks)로 사례한 후에 나누어 주는(Giving) 것이다. 감사하는 마음은 좋은 땅이며 나누어 주는 마음은 꽃밭이 아닐까?

저작권자 © 한국성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