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척때부터 선교해온 군산 평안교회
10평 임대로 시작한 조병문 목사
사례비 줄여도 선교비 안 줄여 
인도에 선교사 파송 시작으로
33곳 돕고 62곳엔 개척-건축비
제자훈련도 힘써 자체 교재도

“목사님, 빚도 못 갚는데 무슨 선교를 합니까? 빚 먼저 갚고 형편이 나아지면 선교는 천천히 하시죠.”

“집사님, 자식이 대학에 들어갔는데 돈이 없으면 어떻게 합니까? 빚을 내서라도 어떻게든 등록금을 마련하지 않습니까. 빚이 있어도 선교는 절대 멈춰서는 안 됩니다”

조병문 목사.
조병문 목사.

빚을 먼저 갚고 선교하자는 사람은 군산 평안교회의 한 성도이고, 빚을 지더라도 선교해야 한다는 사람은 이 교회의 조병문 담임 목사이다.

 군산 평안교회(조병문 목사)는 빚을 내서라도 선교하는 교회다. 개척부터 지금까지 32년의 목회 중에 빚이 없었던 적이 한 번도 없었지만, 빚 때문에 선교를 멈춘 적도 없다. 초기 선교를 처음 시작할 때 재정을 이유로 교회 빚을 먼저 갚고 형편이 나아지면 선교를 하자고 하는 성도들이 많았다. 하지만 조 목사는 빚을 내서라도 선교는 멈추어서는 안 된다고 설득하며 평안교회를 선교 중심의 교회로 이끌었다.

1992년 10평 남짓한 가게를 임대해 개척한 평안교회는 교역자 생활비를 제대로 지급하지 못할 정도로 궁핍했지만, 개척 초기부터 인도에 선교사를 파송했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 해외 선교사 파송이라는 첫발을 내딛기까지는 힘겨웠지만, 점차 선교비를 보내는 선교지가 늘어났다.

교회당 확장 이전으로 재정이 어려울 때도 교역자 사례비를 줄이면 줄였지, 선교비는 절대 줄이지 않았다. IMF 구제금융의 한파 속에서도 선교비만큼은 손대지 않았다. 지금의 교회당을 건축할 때도 빚이 더 늘었지만, 선교는 중단하지 않았다. 조 목사는 오히려 재정적 지원뿐만 아니라 선교지를 직접 방문해 현장에서 현지 사역자들과 함께 발로 뛰면서 선교했다.

이런 식지 않는 선교 열정과 비전으로 평안교회는 지금 해외 선교지 33곳에 선교비를 지원하고 있다. 교회를 개척하거나 교회당 건축을 지원한 곳이 62곳에 이른다.

특히 인도와 A국에 대한 선교 비중이 높다. 인도에 김봉태 선교사를 시작으로 김현곤 선교사와 현지 사역자 14명에게 선교비를 매달 후원하고 있다. 교회를 개척하고 건축한 곳도 11개나 된다.

A국은 예닮신학교, N신학교 외 3곳에 신학교가 더 있다. 교회를 개척하고 교회당을 건축한 곳도 44곳이다.

이뿐만 아니다. 북한, 필리핀, 베트남, 라오스, 캄보디아, 카자흐스탄, 튀르키예, 멕시코 등 세계 여러 곳에 선교비를 보내고 있다.

평안교회 해외 선교사역은 재정적인 지원으로 그치지 않는다. 현지인 지도자를 양성하여 그들을 통해 교회를 개척하고 건축하는 공격적인 선교를 벌이는 것이 특징이다. A국에서 설립된 예닮신학교는 현재 제주도로 옮겨서 운영하고 있다. 이 학교 졸업생 중에는 한국의 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박사 과정 중에 있는 목사도 있다.

인도단기선교
인도단기선교

현지인이 신학교를 졸업하면 그곳에 현지 교회를 세우고, 그 교회가 성장하면 다시 다른 교회를 개척하는 시스템으로 선교가 이루어지고 있다. 선교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되는 것이다. 그럴 때마다 평안교회는 개척비와 교회당 건축비를 지원한다. 돈이 많아서가 절대 아니다. 일단 지원하고, 뒷감당은 오로지 교회의 몫이다. 

평안교회는 신학교뿐만 아니라 선교지에 일반 학교를 세우는 사역도 병행하고 있다. 아프리카 케냐에 꿈의초등학교를 인가받아 건축, 개교했고, 현재 340여 명이 공부하고 있다. 라오스에도 3년제 전문대학인 국제학교를 인가받았다. 올해만 15명이 이 학교를 졸업했고, 현재 160여 명이 재학중이다. 산골의 사역자 자녀들에게는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다. 지난봄에는 멀리 있는 학생들을 위해 기숙사를 지었다.

교육 선교는 어릴 적부터 교육을 통해 자연스럽게 기독교 가치관을 심어주기 위해 시작했다. 국내에서 어린이집을 운영하면서 많은 재정을 쏟는 이유도 바로 교육 선교를 위해서다. 이렇게 선교지 전방 개척과 현지인 양성, 교육사업을 벌이다 보니 선교비 지출은 점점 늘어나고 이를 감당하다 보니까 빚 또한 늘어났다. 부족한 재정을 충당하기 위해서 마이너스 통장까지 사용하고 있다.

물론 선교의 결실을 보기까지 고비도 많았다. 지금의 교회당을 건축하면서 빚이 급격히 늘어나자 빚을 갚을 때까지 선교를 중단하자는 목소리가 다시 커졌다. 그래서 선교를 중단할 위기도 있었지만, 선교비만큼은 절대로 줄이지 않았다. 그때마다 돕는 손길이 나타났다. 성도들의 선교 열정과 헌신 덕분이다. 선교 프로젝트가 시작되면 모든 성도가 묵묵히 선교비를 감당했다.

평안교회가 이렇게 선교하는 교회로 든든히 설 수 있었던 또 다른 이유도 있다. 바로 개척부터 지금까지 제자훈련을 철저하게 했기 때문에 선교도 가능했다.

조병문 목사는 “개척 때부터 모든 성도가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의 뒤를 따르는 사도행전적 교회를 꿈꾸었다”면서 “그래서 개척 때부터 선교와 동시에 제자훈련을 시작했다”고 밝혔다. 조 목사는 제자훈련을 위해 사랑의교회 제자훈련과 풍성한교회 양육시스템과 셀 목회 등 국내 내로라하는 양육시스템을 두루 섭렵했다. 여기에 TEE성경공부 등 성경 말씀을 삶으로 살아내는 훈련도 집중했다. 자체 훈련교재를 만들고 개발하는 데도 힘썼다.

양육은 셀 리더가 새신자를 만나는 새가족 섬김(5주)부터 시작된다. 이후 일대일 양육 훈련(5주)이 진행된다. 새신자 교육을 이수하면 복음의 기초와 성경적 교회에 관한 소그룹 성경공부가 25주간 이어진다. 이후에는 제자대학(14주 4학기)과 성경대학(8학기) 코스가 있다. 여기서는 사복음서와 모세오경 등 성서 개론을 배운다.

평안교회 성경대학
평안교회 성경대학

지금까지 제자훈련을 거쳐 간 성도가 500여 명에 이른다. 또 이 과정을 거쳐 세워진 셀 리더가 37곳의 셀 가족을 섬기고 있다. 제자훈련은 교재를 중심으로 진행되지만 그렇다고 단지 이론 공부로 그치는 것은 아니다. 이론 중심이 아니라 실제 삶으로 열매 맺도록 산 교육을 추구한다. 기초는 성경 말씀이지만 실제 삶의 현장이 말씀화 되도록 하는 것이 제자훈련의 목표이다.

조 목사는 제자훈련을 통해 자신의 실제 삶을 공개한다. 성도들과 거리낌 없이 소통하며 모든 영역에서 제자로서 삶의 모습을 진솔하게 보여 주기 위해서다. 성경을 가르치고 공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말씀의 가치관대로 살도록 훈련하는 것은 훈련된 사람만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조 목사는 “가치관이 변하려면 자기 속에 있는 것들을 끄집어내야 하는데, 나부터 열어야 한다”며 “성경대로 살고 실제로 그런 삶을 살도록 한다. 그래서 스스로 삶을 공개하며 이해해 주고 품어주고 기다려주곤 한다”고 말했다.

삶으로써 제자의 모습을 보였기에 제자훈련도 가능했고, 선교중심적인 교회를 지탱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제자훈련 중에는 많은 과제를 수행해야 한다. 말씀을 배우고 암송은 기본이고, 생활 속에서 실천할 수 있는 작은 미션을 준다.

가령, ‘아내를 위해 설거지를 2번 하라’, ‘커피는 당신 스스로 타라’, '신발은 신발장에 잘 정리했는가?’ 등 생활 속 작은 실천을 통해 상대를 섬길 수 있는 과제가 수십 번 반복된다. 이런 임무를 수행하면서 함께 식사도 하고 교제도 하면서 자연스럽게 양육 훈련에 스며든다는 것이다. 성경 말씀을 가르치고, 그 말씀에 따라 실제 삶을 살도록 양육 을 마칠 때쯤 되면 신앙과 삶의 가치관이 변하게 된다는 것이 조 목사의 생각이다.

조병문 목사는 “신학교 재학 시절, 목회의 방향에 대해 끊임없이 기도하면서 자연스럽게 제자훈련과 선교를 위한 목회를 해야겠다고 마음먹고 교회를 개척하게 되었다”며 “예수님이 주인 되신 평안교회로 한 영혼 한 영혼을 전도하여 예수님의 제자로 훈련하고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선교 사명을 감당하는 교회를 만들겠다는 소명의식으로 목회를 시작하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평안교회의 비전은 2,000명의 셀 리더를 세우고, 100명의 선교사를 파송하며, 100개의 교회를 선교지에 개척하는 ‘2000-200 세계 비전’을 꿈꾸고 있다. 청소년 문화센터와 노인복지관 노숙자와 장애인 쉼터 건립 등 야심 찬 비전을 세우며 지금도 멈추지 않는 선교로 그 꿈을 향해 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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