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웨슬리는 두 가지 목적 때문에 대학의 펠로우(특별연구원) 자리를 내려놓고 미지의 신대륙 조지아 선교를 결정했다. 하나는 자신의 영혼을 구원하고자 함이었다. 조지아에서 얻을 수 있다고 생각 되는 거룩함을 옥스퍼드에서는 얻을 수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다른 하나는 하나님의 영광만을 위하여 살고자 하는 열망이었다. 

1735년 10월 14일, 영국 여객선 시몬즈(Simmonds)호가 조지아주를 향해 항해를 시작했다. 멀고먼 신대륙을 향해 대서양을 항해하는 이 배에는 존 웨슬리를 비롯해 총 119명이 승선하고 있었다. 대서양 항해는 거센 폭풍과 태풍에 휩쓸려 생명까지 잃을 수 있는 위험한 항해였다. 존 웨슬리는 57일 간의 항해 동안 크게 세 번의 폭풍우와 한 번의 허리케인을 만났다. 

그 중 10월 25일에 만난 폭풍이 가장 무서웠다. 정오부터 몰아치기 시작한 비바람은 무려 12시간 동안 119명의 영혼에게 무차별 폭력을 가했다. 존 웨슬리는 폭풍의 위력을 이렇게 표현했다. “바다의 파도가 얼마나 세고 무서운지 마치 하늘에 닿았다가 다시 지옥으로 떨어지는 것 같았고 당장에 잡아 먹으려고 포효하며 달려드는 사자와 같았다. 맹렬한 파도는 10분마다 대포를 쏘듯이 배를 사방에서 때렸다.”

이러한 와중에 존 웨슬리의 일행은 어린아이에게 유아세례를 베풀었다. 폭풍우 속에서 존 웨슬리는 기도하고 성경 구절을 암송했지만 마음 속의 불안감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점점 더 커져만 갔다. 배보다 훨씬 높은 파도가 존 웨슬리의 머리를 뒤집어씌우고 온몸을 휘감고 쓰러뜨렸다. 천둥 번개에 하늘과 땅이 뒤집힐 것처럼 요동쳤고, 존 웨슬리와 동료들도 넘어져 쓸려갔다.

그때 평화로운 찬송 소리가 들렸다. 독일 모라비아교인들이 저녁예배를 드리며 부르는 찬송이었다. 그들은 비에 젖고 바람에 넘어지면서도 찬송을 부르고 있었다. 그들의 얼굴에는 두려운 기색이 전혀 없었고, 오히려 평화와 기쁨이 가득한 모습이었다. 존 웨슬리는 그들을 계속 바라보았다. 죽음의 공포에 떨며 비명을 지르고 있는 영국 교인들의 모습과는 너무 달랐다. 

존 웨슬리는 깊은 충격을 받았고, 예배를 막 끝낸 그들 중 한 사람에게 다가가 물었다. “당신은 두렵지 않습니까?” “네, 두렵지 않습니다. 


오히려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할 뿐입니다.” 존 웨슬리가 다시 물었다. “당신들 중에 있는 여자들과 어린아이들도 두려워하지 않습니까?” 


“네, 우리 중에는 여자들이나 어린아이들도 죽는 것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모라비아교인들의 대답은 존 웨슬리에게 폭풍보다 더 강한 충격을 주었고, 이후 그의 마음속에 지울 수 없는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들의 모습은 마치 천사의 얼굴과 같았고, 노랫소리는 이 세상의 어떤 환난풍파에도 흔들리지 않는 평화와 기쁨을 전하고 있었다. 그들은 남녀노소 누구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구원의 하나님께 감사하고 자신들을 위해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주님을 찬송하고 있었다.

이것을 통해 존 웨슬리는 두 가지 중요한 차이점을 깨달았다. 하나는 그가 ‘외면적 신앙’은 소유했으나 ‘내면적 신앙’을 갖지 못했다는 것이다. 경건의 규칙과 습관이 있고, 예배와 성찬과 같은 의식을 가지고 있었지만, 성령의 역사로 주어지는 마음의 신앙(religion of heart)이 없었다. 그러나 모라비아교인들은 성령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사랑과 속죄의 은총을 체험하여 마음의 신앙을 소유했기에, 세상의 어떤 환난풍파나 심지어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었다. 또 다른 차이점은 모라비아교인들은 기쁨으로 마음껏 찬송을 부르는데 자신들은 부를 찬송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들에게는 기도문과 예배순서가 있지만, 자발적으로 마음껏 소리 내어 외쳐 부르고 기쁨으로 하나님을 찬양할 노래가 없다는 차이점을 깨달은 것이다. 존 웨슬리는 배에서 독일어를 배우는 동시에 모라비아교인들의 찬송을 배우기 시작했다. 기존의 신앙 질서로는 더 이상 안주할 수 없는 위기가 닥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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